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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08. 2019

독일 생활의 열쇠는 "열쇠"다

독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 없이 말할 것이다.


“열쇠”



독일에서 열쇠는 진짜 중요하다. 별 다섯 개를 그려도 모자라다.

우리는 집 계약과 동시에 아주 굵직한 열쇠 꾸러미를 받았다. 건물 현관문부터 집 현관, 각 방, 우편함, 지하 창고까지..  무거운 열쇠만큼이나 책임감도 무거워진다.


특히 번호키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독일에서 열쇠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열쇠를 집에 두고 나왔거나 분실하는 것.


먼저 열쇠를 분실했다면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하다. 특히 건물 전체 현관 열쇠를 분실할 경우 건물 내 모든 세대의 열쇠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엄청나다.

그래서 보통 집 계약과 동시에 열쇠 보험을 든다.

(난생 들어 들어보지도 못한 열쇠 보험이라니.. ) 열쇠 분실은 흔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동네 곳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찾아 달라는 안내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집안에 열쇠를 두고 그냥 경우다. 대부분의 독일 현관문은 나갈 때 닫힘과 동시에 자동으로 문이 잠겨서 밖에서는 열 수가 없다.


보통은 열쇠를 따기 위해 열쇠공을 부른다.

열쇠 수리공의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평균 기본 백유로 이상은 예상해야 한다. 주말에는 더 비싸다. 응급 열쇠 수리공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내가 아는 지인은 집 유리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열쇠공을 부르는 것보다 유리창을 갈아 끼우는 편이 비용이 더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열쇠의 무게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에 그렇게 나보고 열쇠 잘 챙기라고 귀에 못이 박히듯 얘기하던 남편은 정작 본인이 두 번씩이나 열쇠를 두고 나갔다.


사건의 발단은 여행으로 인한 나의 부재로부터 비롯됐다. 내가 여행을 떠난 날, 그는 DHL에 택배를 찾으러 가려고 문을 닫은 뒤, 한 발자국 떼는 순간 깨달았다고 한다. (왜 깨달음은 늘 후에 찾아오는 것인가.)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왔다!”


그나마 이때는 내가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어서 열쇠를 받으러 왔었다.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나는 저 멀리 프라하에 있었던 것..

남편은 식은땀이 줄줄났고..울그락 붉으락 화를 내는 내 얼굴이 마구마구 떠올랐으며.. 그러던 차에 누군가 버린 쇠꼬챙이가 눈에 띄었단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동아줄과 같은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쇠꼬챙이로 살살 밀어내니..


‘탈칵’

문이...

다.


그의 무용담을 듣고 나는 다행이란 안도와 함께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남편. 전직이 의심스럽다. 아무리 잡기에 능한 그지만 어떻게 문을 땄을까?

2. 지나치게 열쇠를 강조해서 열쇠 보험까지 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열려? 불안하다.


다음 날 친구들에게 열쇠가 허술해서 도둑이 들까 봐 걱정된다고 얘기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열쇠 꽂고 자지 않아?”


독일 사람들은 열쇠를 문에 꽂고 잔다고 한다. (심지어 한 친구는 자기 시어머니는 방문도 다 잠근다고.)

안에서 열쇠를 꽂으면 밖에서 무슨 수를 써도 문을 열지 못할뿐더러 밖에 나갈 때도 바로 보이는 열쇠를 뽑아서 나가면 되니 깜빡하고 나갈 일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그 이후로 열쇠를 문 앞에 꽂고 다녔고 아직까지는 열쇠를 분실하거나 집에 두고 나온 일은 없다.

입이 닳도록 하는 이야기지만 한국의 도어록 도입이 시급하다. 나는 현관 번호키가 얼마나 편리한 문물인지 열쇠를 고수하는 이 나라에 와서야 알게 됐다. 우리는 늘 가지고 있을 때는 편안함을 모른다.


대체 왜 번호키를 쓰지 않을까?


우리는 혹시 미국 총기처럼 독일도 열쇠 조합의 힘이 막강해서 대대적으로 바꾸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재기했지만 적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독일 사람들 역시 딱히 그들이 왜 열쇠를 고수하는지 모른다. 그냥 계속 그렇게 써왔다는 것이다. 오히려 번호키가 더 도둑이 침입하기에 쉽지 않겠냐고 반문했는데, 꼬챙이로 허술하게 열리는 것으로 봐선 열쇠가 훨씬 도둑 입장에서 수월해 보인다. 그들은 정말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열쇠야 말로 가장 훌륭한 보안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매우 번거로운 존재이지만 열쇠야말로 독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대명사다. 그들은 오랫동안 내려온 것은 잘 바꾸지 않는다. 열쇠가 그렇고,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것이 그러하며, 지역 신문에 부동산 매물을 올리는 것도 그렇고, 동네 전봇대 곳곳에 개인 파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달라는 포스터가 즐비한 것도 그렇고, 이메일이 아닌 편지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도 그렇다. (이를테면 만약 헬스장 1년 회원권을 산 뒤 취소하고 싶다면 구두가 아닌 취소 편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독일어 시험에는 편지 쓰기 항목이 있다.) 이 외에도 나열하기 벅찬 많은 예들이 있다.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은 때로 낭만적이지만 때로 답답해서 이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열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탈칵”  명쾌하게 이 생활 방식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내게도 생길까?


그렇지만 번호키가 편리하다는 것에 여전히 나는 이의가 없다. 

‘과연 독일에도 각 가정에 번호키가 보편화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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