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게되기 전, 나는 이 나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굳이 독일에 대한 나의 기존 이미지를 꼽는다면 다큐멘터리를 할 때 핀란드와 함께 항상 모범 사례 국가로 꼽히는 선진국 정도랄까.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시 주제가 교육, 환경, 복지면 무조건 가는 나라가 독일이다.
어쩌다보니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살게 된 독일.. 살아보니 왜 그토록 독일이란 나라를 취재했는지, 취재만 하고 글로만 썼던 그 현장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다.
1. 모든 계산원들이 앉아서 일하는 나라
내가 독일에 왔을 때 제일 처음 감동했던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손님이 왕인데, 독일은 노동자가 왕이다. 마트 캐셔들은 모두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한다. 물론 한국에도 이미 도입이 됐지만 아직도 서서 계산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의자가 있더라도 불편해서 그냥 서있는 경우도 있었다.
의자를 비교해보면 독일 마트 같은 경우 서재형 의자같이 생겨서 앉는 자리도 편하고, 등받이도 크게 되어있다. 마트 직원들은 계산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물도 마시곤 하는데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린다.
그들은 노동의 가치와 그에 상응하는 휴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일례로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때 알디는 전 매장이 문을 닫았는데 이유가
“직원들도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기 때문” 이다.
대목 장사를 노리는 우리 정서로는 놀랄 만한 일이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문구에 우리는 미소지었다. 누구나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서 미리 장을 봐두어야 하는 수고로움 쯤은 기꺼이 감수한다.
2. 세계 최초의 동물 보호법 제정,
동물들이 살기 좋은 나라
독일 사람들의 반려경 사랑은 자동차에 버금갈만큼 드높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가 엄청 개를 좋아했고 본인의 취향+선전용으로 1933년 세계 최초 동물 보호법을 제정한다. 동물 학대 시 최대 징역 2년, 벌금에 처하는 강력한 법이었고 가장 현대적이고 구체적인 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탕달, 히틀러.. 독재자들은 개를 좋아했다. 개가 가진 충성심이런 성질 때문일까 사람을 못 믿어서 일까)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갖가지 반려견 관련 법규들이 신설되고 또 지켜지고 있다.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우선 개에 대한 세금을 라이프치히의 경우 1년에 100유로 가량 지불해야 하며, 개마다 주민등록같은 고유번호가 있고, 세세하게는 개 산책 시간도 규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는 가족과도 같고 개와 동행하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처음엔 백화점에도 개가 들어와서 기겁했지만; 조금은 익숙해지고 있다.
(쇼핑몰 반려견 입장은 최근들어 약간 찬반이 나눠지는 문제인데 그래서 허용을 하는 곳도 있고 문앞에 반려견 입장 금지 스티커나 안내문을 붙여놓은 매장도 있다.)
입장이 불가한 마트나 대형 복합 쇼핑몰에는 이렇게 개를 묶어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개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복합 쇼핑몰도 많다. 또 드레스덴의 작센스위스 국립공원 정상에는 개들이 마실 수 있는 식음료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사람은 돈 주고 물을 사마셔야 한다.
개뿐만 아니라 동물 보호 단체가 워낙 많고 힘도 막강해서 동물들이 참 살기 좋은 나라가 독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 장애인도 대중교통 이용이 수월한 나라
독일의 트램과 버스, 지하철은 저상이다. 즉 계단이 없다. 아주 오래된 트램 같은 경우 계단이 있는 칸이 있지만 대신 맨 마지막 칸에는 계단이 없는 신식 트램을 붙어서 운행한다. 때문에 장애인 및 유모차가 쉽게 대중교통을 탈 수 있다.
바로 유모차 및 휠체어를 둘 수 있도록 문 앞에 공간이 마련되어 이TSmsep,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을 비워둔다. 비상시 누를 수 있는 벨도 옆 기둥에 있다.
기차에는 장애인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휠체어에 탄 채 앉기 쉽도록.. 테이블 자체가 위로 올려진다. 물론 장애인 자리 바로 옆에는 널직한 장애인 화장실도 자리하고 있다.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학교, 관공서 등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자동문이 설치 되어 있다.
4. 엄마와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독일에서는 아이 출산 시 킨더카드가 지급되어 양육수당과 함께 교통비 무료, 약값 무료 혜택 등을 받는다. 육아휴직을 내고 돌아왔을 때 고용주는 무조건 그 자리를 보장해주는 것도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복지혜택은 주마다 법이 달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긴하지만 폭넓은 지원덕분에..(대신 급여의 40% 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부모들이 마음놓고 아이를 낳는다..
라이프치히가 독일 내에서도 워낙 출산율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나, 나가보면 아이들이 정말 많다. 공원에서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일 여성들도 출산 후 어쩔 수 없이 미니잡을 선택 하거나, 유치원을 대기해야 하는 것과 같은 힘든 점들이 있지만 한국만큼 각박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나는 이처럼 훌륭한 복지 국가에 잠시 살고 있지만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기에 삶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한 나라의 복지라는 것은 대부분 자국민에게 좀 더 풍요롭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나한테만 인사하지 않는 마트 직원, 영어를 할 줄 알아도 독일어를 고집하는 관청 직원, 은연 중 나오는 리더 국가의 국민이 갖는 얄미운(?) 자부심, 정말 느려터진 관청 서비스 등 외국인으로서의 애환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장/단점이 똑같이 많아서 완전히 사랑할 수도, 완전히 싫어할 수도 없는 애증의 나라가 독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나라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 및 제도는 정말 훌륭하다는 점이다. 반려견, 장애인, 어린아이, 임산부, 학생 등 내가 감동한 모든 것들이 이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이 밖에도 외국인 정착을 위한 공공서비스 할인 카드, 저렴한 학비를 비롯한 각종 학생 혜택에서 독일이 선진국임을 느낀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다. 독일 정책이 두는 가치관, 지향해나가는 미래를 보면 선진국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늦더라도 기다려 주고, 뒤처지는 이에게 기꺼이 손을 건네준다.
우리는 이미 너무 빨리 걸어왔다.
이제는 조금은 늦더라도 지름길이 아닌 바른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