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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04. 2019

'시간 부자' 독일 사람들의 취미생활 베스트 6

시간 부자가 부러운 시간 거지

스티브 잡스가 남긴 공적은 실로 대단하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의 예로 전 세계인의 취미생활을 일관되게 만들었다. 독일역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한다. 카페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물론 집에서도. 스마트폰 외에도 문명의 이기에 맞물린 세계인의 공통 취미 텔레비전, 인터넷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방인인 나의 눈길을 끌었던 독일 사람들의 취미가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과 독일 통계치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압도적이다


1. Gedanken nachgehen 생각하기


생각하기의 개념은 참 넓고도 넓다. 멍 때리기 일 수도 있고.. 진짜 골똘히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종의 사색의 시간일 수도 있겠다.  취미에 이런 표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독일 철학이 발달했고 쇼펜하우어, 니체, 헤겔 등 저명한 철학자들을 낳은 나라에 걸맞은 취미일 수도 있겠다.

가끔 이 사람들은 참 생각을 많이 하고 기초 상식이 넓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시험 역시 결과물보다는 그 결과물에 이르는 생각..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가에 점수가 책정된다. 대학 입시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킬(?)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받은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처음에 난관에 봉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초 상식의 경우에도 하나를 물어보면 온갖 이유들이 주르륵 나온다. 나의 짧은 독일어로 다 이해하기가 힘들고 가끔은 너무 길게 말해서 지루하기도 할 만큼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들이(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많다.


2. Rätsel lösen 수수께끼/퍼즐 풀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진 풍경이 아닐까 싶은데.. 독일 기차나 비행기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 가운데 하나가, 신문이나 잡지의 가로/세로 퍼즐을 푸는 어르신들이다. 생각하기의 연장선에서 머리 쓰는 게임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의 특징이다. 덧붙여 기차에서 뜨개질하는 여성분들도 진짜 흔하게 볼 수 있다.



3. Gesellschaftsspiele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초등학교 때 사촌들이랑 하고 땐 것 같은데.. 독일인들에게 ‘졸업’이란 없는 듯하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보드게임을 즐긴다.

각자 맥주 한 병에 보드게임으로 몇 시간을 논다.

Spieleabend’ 라고 해서 게임의 밤이 있다.

호스트가 오늘 슈필 아벤트를 한다며 초대장을 보낸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한 집에 모여서 각종 보드 게임을 하는 것이다.



4. Ehrenamtliche/자원봉사


우리나라도 자원봉사가 많기 때문에 이색적인 취미활동은 아니었으나.. 타인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독일인의 인식에 나는 무척 놀랐다. 공원 쓰레기 줍기, 독거노인과 산책하기 등 정말 다양한 자원봉사 단체가 있으며 사람들은 자원봉사에 대해 높은 보람을 느낀다. 연금자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참여도도 높다.

예전에 직업에 대한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NGO 활동가에 대한 직업선호도가 5위권 안에 있었다. 그들에게 꿈의 직업은 작가, 음악가, NGO와 같은.. 타인과 어떤 공감대를 향유하는 가치에 있었다.

돈이 모이는 것,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극강의 비주얼 시대에도 신념을 지켜가고 있는 선의 의지가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5. Bücher lesen/독서


취미에서 빠질 수 없는 항목으로 독서가 있다. 왠지 독일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독일도 독서율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국민 전체 독서율은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이 더 높다.



6. im Garten Arbeiten 정원 가꾸기


내가 생각하는 독일인의 압도적인 취미생활 1위는 정원 가꾸기다. 독일 사람들은 꽃과 식물을 매우 사랑한다. 어딜 가나 가드닝 용품들을 흔하게 볼 수 있고.. 집들마다 각종 꽃과 화분으로 장식해 놓았다. 기념일이든 평소에든 꽃을 참 자주 산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를 받았을 때 꽃만큼 가져가기에 괜찮은 선물도 없다.


특히 가드닝은 봄에 더욱 활기를 띠는데, 시장, 마트, 인테리어 소품샵 등 각종 업체에서 꽃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시내 곳곳이 꽃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파우치나 샘플을 무료로 주는 화장품 기업과 달리 독일의 화장품 회사는 꽃 씨앗을 프로모션 할 정도이다. 한 번은 가드닝 업체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는데, 마치 굉장히 세련된 옷가게를 오픈한 것처럼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광경도 나에게는 생경했다.


혹자의 해석은 독일 날씨가 심각하게 안 좋기 때문이기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 같다. 워낙 비가 오고 흐린 날이 많아서 화사한 꽃과 식물들로 집안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낙이다. 꽃값이 저렴하기도 해서 보통 장미 한 다발에 2유로 정도 하기 때문에 구입에 부담이 없다. 아직까지 꽃을 싫어하는 독일 사람은 못 봤다. 이따금씩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독일인이지만..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 그 순수함에 동화될 때도 있다.


독일인의 취미는 대체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많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 보기, 스마트폰 및 SNS 등 우리와 비슷한 취미활동들도 있지만 게임의 밤이나 퍼즐 풀기 같은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취미도 있다.

누구에게는 고리타분할 수 있는 취미겠지만 나 같은 이에게는 약간은 감성 취미로 다가왔다. 워낙 자극적인 MSG취미가 많은 시대에 좀 더 좀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고 할까..


사실  이런 취미들은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그들에게는 충분히 여가 생활을 즐길만한 시간이 있다.  근로 기준법이 대부분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보통 오후 4시~5시면 퇴근을 한다.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


소설 <시간을 파는 남자>에는 제목 그대로 시간을 파는 남자가 등장한다. 시간의 주인이길 꿈꾸기만 할 뿐,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기막힌 상품을 하나 만들어낸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5분을 담아 특허를 내고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상품으로 만들어진 시간은 불티나게 팔렸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같은 이야기이지만, 공감이 가는 건.. 바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5분 만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푸념한다. 직장에서 ‘뒷목’ 잡는 탓에 여가 생활은 ‘뒷집’ 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이제 막 엄마가 된 친구들은 더욱더 나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시간마저 사야 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 살다온 '시간 거지'는, '시간 부자'인 그들이 부러웠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사고 있는 시간 소비자일 수도 있겠다. 취미 생활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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