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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10. 2019

독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평소에는 참 점잖은(?) 독일 사람들이 격하게 흥분할 때가 있다.

첫 번째는 축구경기다.

축구야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 사람들은 축구를 격하게 사랑한다.

다 함께 즐기는 것은 좋지만 간혹 흥분으로 인한 각종 사고도 많아서 축구 경기를 할 때 치안을 조심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두 번째는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의 경우 당연히 유럽이기 때문에 한국과 달리 연중 가장 큰 행사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크리스마스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대단했다. 거의 1년 내내 기다리는 연중행사 같은 날이었다.


독일 사람들은 거의 10월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마트, 가구점, 인테리어숍, 꽃집 등 너나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다.

각 가정에서는 트리를 만들 채비를 한다. 핀란드가 산타클로스를 만들었다면 독일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1800년대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 전역을 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는데..독일에선 크리스마스가 끝난 뒤 트리를 한시적으로 수거까지 해가는 날이 따로 있을 정도로 트리 소비량이 높다.




이어서 12월 첫 주가 시작되면

<대림초> 즉 Advent 초를 밝힌다.

크리스마스 4주를  Advent 강림절이라고 해서..

12월 첫째 주에는 초 하나,

둘째 주에는 초 두 개,

셋째 주에는 초 세 개,

넷째 주에는 초 네 개를 피운다. 촛불에 불을 밝히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의미인데, 천주교 신자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종교가 없는 나에겐 좀 생소하게 다가왔다. 독일 인구 자체가 천주교가 많다보니 대림초 의식 역시 거의 모든 가정에서 행해지며 길거리를 지나가도 대림초 장식용품들을 다양하게 판매된다.



캔들과 함께 Advent 달력도 있다. 하루 하루 날짜마다 초콜릿이 있어서 아이들은 초콜릿을 하나씩 떼어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경건한 마음, 소중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그 의식은 종교를 떠나서 아름다워 보였다.


무엇보다 12월엔 쇼핑백을 든 사람들도 아주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마치 1년 간 모아 놓은 돈을 이날에 다 쓸 기세로 선물을 산다. 거리는 선물이 한 아름 담긴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
크리스마스 마켓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이 나온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첫 주말 마켓은 굉장히 붐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다들 컵을 하나씩 들고 후후-불며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마신다. 글뤼바인과 함께 곁들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슈톨렌은 크리스마스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음식이다.

나도 글뤼바인 한잔에 크리스마스의 낭만에 젖어 보곤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저녁에 케이크에 촛불을 불고 끝냈을 크리스마스인데.. 독일에서는 대대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12월 내내 근사한 시간으로 물들어 가는 기분이 들곤한다. 마켓도 가고, 글뤼바인도 마시고, 매년 나오는 글뤼바인 기념컵도 수집해야 한다.


나는 올해로 3번째  독일에서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만들게 될 것 같다. 이따금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면, 폴 오스터의 소설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 오기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는 사진 찍기다.

오기는 12년 동안 매일 아침 정각 7시에 애틀랜틱 애비뉴의 클린턴 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서서 정확하게 같은 앵글로 딱 한 장씩 컬러 사진을 찍어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4천장이 넘었고, 오기는 날짜만 다른 같은 사진 4천장을 책 속의 화자 ‘나’에게 보여 준다.

하찮게 사진을 넘기는 나에게 오기는 말한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사진들은 얼핏 보기엔 똑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매일매일 다른 이야기와 다른 주인공이 숨어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오기는 시간을,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찍고 있다는 것을.

나의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오기는 셰익스피어 한 구절을 읊조린다.


"내일 또 내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시간은 하찮은 듯한 걸음걸이로 걸어가지만, 그 걸음걸이가 모여 '인생'이 된다.


삶이란 건 그런 '내일'을 3만 번쯤 맞이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하고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나 둘 모으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마켓, 글뤼바인, 슈톨렌, 대림초, 크리스마스카드..

내 기억 창고 곳곳에 작은 반짝임들이 뿌려졌다.

마치 12월 내내 귀여운 꿈을 꾸는 것만 같다.


폴 오스터는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어떤 이야기도 진실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일상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면,
독일에서의 크리스마스는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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