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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10. 2019

그래서, 독일에 살아보니 어때?

한국 아닌 어느 곳을 꿈꾸는 당신에게

내가 독일 땅을 처음 밟은 것은 가을도 깊은 시월이었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열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

                                                                  

<그리고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전혜린




작가 전혜린의 표현은 절묘했다.

그녀가 써 내려간 독일의 10월과 내가 마주한 독일의 풍경은 너무나 같아서 마치 데칼코마니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독일의 이 집에 처음 짐을 내려놓았을 때,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나 집의 창문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바깥 풍경은 낙엽들이 우수수 다 떨어졌고.. 몇 개 붙어있던 나뭇가지만이 겨우 파리하게 몸을 유지하려 안갖 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소설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며. 이 쓸쓸한 풍경 앞에 지독히 외로워했다.

독일의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서머타임이 끝나면 4시부터 어두워지는 데다, 연일 흐리고 비가 왔다. 그나마 한줄기 빛인 크리스마스 마켓이 끝난 1월과 2월은 최악 중 최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조량 부족에 허덕이는 내 몸을 위해 비타민 D를 성실히 섭취하는 것뿐이다. 늘 추웠다. 내 입에선 춥다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번 터져나왔다. 매일 밤 옷 세개도 모자라 경량 조끼를 입고, 양말을 신고, 물주머니까지 껴안고 잤지만 추위를 이겨낼 수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겨울을 보내고,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 봄이 왔다.


모든 것이 느린 이 나라는 봄도 참 더디게 와서, 4월 중순은 되어야 이제 좀 따뜻하다..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봄이 되어서야 집 앞에 드리우진 앙상했던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것은 아카시아였다.

우리 집 창문을 온통 장식한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

나는 아침에 일어나 침실에서 거실에 들어올 때마다 연신 감탄했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나는 분명 행운아다.

마치 이 아카시아 나무는 독일이란 땅에서 아등바등 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이육사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는데,

나에게 "독일의 오월은 아카시아꽃이 익어가는 계절"로 기억될 것 같았다.


아카시아 꽃이 만개하면서 나도 점차 독일이란 궤도에 적응해 가게 됐다.

햇빛을 뚫고 들어오는 찬란한 아카시아꽃의 빛깔,

바람과 함께 살갗을 스치는

싱그러운 아카시아 내음..

이러한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꼈다.

그날 나의 일상을 간략히 나열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과 캐리어를 끌고 마트에 가서 물을 사 왔다. 아침 겸 점심으로 자투리 채소들을 볶아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길어질 대로 길어진 머리를 스스로 잘랐다.  6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원고를 보고 수정했다. 너무 집중한 탓인지.. 눈이 침침해서.. 공원으로 나가 달리기를 했다.

봄을 맞은 나뭇잎들은 더욱 싱그러워졌다. 초록의 깊이가 한결 성숙해졌다. 바야흐로 계절은 5월의 여왕을 향해 한층 더 청신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좋다”라는 말이 연신 나왔다.

그것은 마치 "춥다"를 달고 사던 겨울에 대한 보상 같았다.



어느덧 나는 불편함 투성인 이 삶에 불평하면서도 기꺼이 박자를 맞추어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 아닌 다른 곳, 한국 아닌 저 너머를 아련히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곤 했다.


“독일에 사는 것은 어때?”


물론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 저렴한 물가, 일과 휴식의 밸런스 등의 장점도 많지만 불편한 의료와 느린 행정 서비스, 독일어의 어려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인종차별, 향수병 등 단점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이나 이민을 고민하는 그들에게 무조건 독일로 오라고 할 수도,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방식에도 유행이 있다. 휘게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소확행.. 많은 신조어들이 이를 반증한다. 유행을 쫓아가기보다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생활방식도 워낙 다양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딱히 정답도 없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이.. 즉 독일에 온 것이 잘한 결정인지 잘못된 결정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흐림으로 가득한 날씨 속을 헤메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 자체가 안개 속일지도 모른다. 혹은 안개가 걷히고 해가 개이고 또 다시 안개가 걷히는 그 반복됨 어딘가에 삶의 눈부신 햇살같은 것이 살풋 껴 있는.. 그런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나라에서 3년간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나는 분명 많은 부분에 있어서 달라졌다. 직접 부딪혀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할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

그러니까.. 내 삶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예전보다 한결 물건에 대한 집착이 줄었으며, 남과의 비교에도 자유로워졌다.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이 주는 희열을 일상에서 곧잘 느꼈다. 이는 나를 더욱 나이게 만들어 주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생활의 불편함들은 내 안에 내재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자족하는 삶에 행복을 느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경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신적 만족의 기쁨에 아주 조금은 다가가고 있었다.

살면서 새소리, 나무의 성장, 나뭇잎의 푸르름에 이토록 자주 감동했던 적이 있었을까..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살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폭풍 속에 들어갔다 나온 나는,
이전의 나와는 분명히 달랐다.

...
독일에선 이 마음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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