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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Mar 26. 2020

코로나 감금 수기/적어도 달리는 동안은 안주하지 않았다

                                                                                                                                        

나는 유독 체육을 잘 못했다. 국영수와 같은 기초 과목들은 웬만큼 상위권이었지만 체육은 늘 ‘양’을 면치 못했고 진짜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 잘해봐야 겨우 ‘미’였다. 허약체질이기도 했거니와 몸이 둔했고, 구기 종목은 완전히 젬병이어서 공이 내게 날아오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 일쑤였다.


이상하게 나는 동그란 것들이 무서웠다. 축구공에서 조그마한 탁구공까지, 날아오는 공들을 시원하게 툭-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동그란 것들이 핑퐁 핑퐁 포물선을 그리며 마구마구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렇다 보니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 앞에서 자동적으로 눈이 먼저 감겼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공포를 알아차렸다. 나는 공포를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쪽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미련한 아이였다. 그렇게 해서 부러진 안경이 몇 개나 되었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혼이 나곤 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내가 그나마 잘하는 종목은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아무런 기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오롯이 맨몸, 맨손으로 할 수 있었으며 어떤 공격도 필요하지 않았다. 공격도 방어도 둘 다 소질이 없었던 나는 홀로 방어하고 개척해나가는 쪽이 편했다. 달리는 것은 오롯이 나와의 싸움이었다. 경쟁자는 나였다. 기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빨리 달리라고 다그치는 상대도 없었기에, 달릴 때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빠른 속도로 잽싸게 잘 달린 것은 아니었다. 장시간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마라톤에 나는 제법 소질이 있었다. 천천히 내 갈 길을 가는 이 운동의 패턴이 묘하게 내 적성이랑 맞았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장소 제약 없이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할 수 있어서이고, 두 번째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뛸 때면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어서다. 그냥 자연을 보고 내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끼면 된다. 네 번째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생활의 리듬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곧잘 심산이 복잡할 때는 달리곤 했는데 독일에 와서는 달리기가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가끔 솔직히 자주, 이곳에 있는 내가 무력해질 때가 있었다. 독일에서 나는 무직이었다. 남편은 공부를 하느라 바빴다. 내가 ‘여유’를 가장한 채 시간을 뭉그적 뭉그적 보내는 동안 한국의 친구들은 집을 샀고, 같은 일을 했던 동기들은 더 좋은 조건의 유명 프로그램에 혼을 쏟아붓고 있었으며, 결혼을 한 친구는 육아로 일생일대의 값진 일들을 일구어 내고 있었다.


지금껏 쉼 없이 달려왔기에 인생에서 쉼표 하나쯤 찍어도 된다고 머리는 생각했지만 마음은 다르게 놀아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초조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공원에 나가서 달렸다. 달리기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적어도 달리는 동안만큼은 안주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여러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조정을 배우는 학생들도 있고, 연인의 머리를 빗겨주는 다정한 남자도 있으며, 공원을 아름답게 가꾸시는 자원봉사자들, 출산 후 다이어트를 위해 단체 스트레칭을 하는 엄마들, 아이, 강아지와 함께 게임을 하는 가족, 여기에 계절의 순환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 꽃과 나무들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때로 바람 따라 실려 오는 꽃향기가 야릇한 향내를 풍기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작열하는 태양이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살갗을 스치는 5월의 돌개바람이 나의 잡다한 걱정들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달리기 마니아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같은 10년이라도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달린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글귀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짧은 한 문장은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에 설득을 실어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주저 않고 걷기를 반복했을까. 행여나, 더러 주저앉고 걷는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완주했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는 상관없다.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깅화를 질끈 동여매고 달린다. 그곳이 어디든 내 발길 닿는 대로 내 힘이 닿는 만큼 달리고 또 달린다.



문득.. 평화롭게 걱정없이 달리던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상기하며 끄적이는..

#코로나감금수기

코로나는 의도치않게 소중한 것들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있다.

새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상황마저 감사하다. 인터넷만은 끊기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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