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스케일에 놀란 게 월지(月池)라면, 또 다른 생각의 의미에 놀란 게 있다.
7세기 신라 선덕여왕 때에 축조된 첨성대.
정사각형 상단과 하단을 제외한 몸통 부분은 30cm 높이의 돌 362개로 축조 되었다고 한다. (내 눈에는 30cm가 안 돼 보이는데..)
전체적으로 둥근 사다리형에 상단은 정사각형으로 마무리된 첨성대 남향의 중간에 창문 형태의 정사각형 문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문을 통해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 태양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비추게 돼 있고, 하지(夏至)와 동지(冬至)에는 아랫부분에서 광선이 완전히 사라져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을 측정했다.
이런 발상이 어찌 가능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흔적이 있어 사다리를 타고 창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유추하는데, 저 안에 계단이 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내부에서도 사다리를 이용했던 거 같다.
사다리를 걸었던 흔적이 육안으로는 확인이 잘 안된다. 단단한 돌에 흔적을 남길만한 사다리 소재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재밌는 건, 첨성대 옆 화장실에 들어가니 화장실 내부 벽에 이런 그림이 있다. 첨성대 제원이다.
왜 하필 화장실 내부에..?
옆지기에 의하면 여자 화장실에도 같은 그림이 있단다. 외부에서는 첨성대 사진을 담느라 관심 갖지 못하겠지만, 화장실에서 줄을 서있으면 주목도가 더 높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고도의 심리술이 아닐 수 없다.
□ 첨성대와 첨성대 제원을 보며 든 의문점 세 가지
하나, 출입구가 없다.
관측을 하려면 들어가거나 올라가야 하는데, 한 바퀴 돌아봐도 들어가는 출입구도 없고, 외부 계단도 없다.
'어~ 정신없이 쌓다보니 출입구 생각을 못 했네.. 에이.. 창문에 사다리 놓고 들어가는 걸로..' 이러진 않았을테고, 이유가 뭘까..
둘, 요즘으로 따지면 불과 2층 높이에서 기대한 천문 관측의 효능이 무엇이었을까. 저 높이에서 바라본 천체 움직임은 그냥 지상에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높이의 효과만 생각했다면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에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무슨 의도가 내재되어 있을까..
굳이 단견으로 유추한다면, 저 안에서 제한된 면적을 통해 하늘을 보면 별자리의 움직임이 더 잘 느껴질 거 같긴 한데, 그런 걸 기대하기에는 저 안에서 상부 사각 틀을 통해 보이는 하늘의 면적이 너무 작을 거 같다.
셋, 첨성대 제원을 보면, 정상부 2단의 높이는 680mm, 기단부 1단의 높이는 320mm, 상하 정방형 부분을 합하면 1미터다.
신라시대에 미터법을 알았을리 만무고, 공교롭다고 하기엔 너무 기이하지 않은가.
아무튼, 저 높이에서 천체 관측을 시도했다는 발상이 나는 너무 신기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