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역 - 문경역 KTX 이용기
문경새재 찾기가 수월해졌다.
성남 판교역과 문경역을 잇는 KTX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지만, 하이킹 마니아들에게는 꽤나 인기 높은 노선이다.
판교역과 문경역이 기점과 종점이며 소요시간은 1시간 33분. 하루 4회 약 4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판교역 출발 첫차가 08:22, 문경역 출발 막차가 18:55로 당일치기 문경새재 여행으로 최적이다. 주요 정차역은 부발, 장호원, 충주, 수안보온천 등이다.
문경역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문경새재를 가는 버스는, 문경 시내를 거치는 노선과 문경새재로 바로 가는 직행 두 노선이 있다.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15분이 채 안 걸린다. 문경의 모든 버스는 무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버스는 KTX 시간과 연계하여 운행하기 때문에 배차 간격이 길다. 버스 이용객이 너무 많아 탑승하지 못했을 경우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므로)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택시는 이용방법과 종류에 따라 대략 12,000윈 내외.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에서 내리면 식당들이 즐비하다.
첫 기차를 이용하면 주차장 도착시간이 10시 반 쯤이니 아침을 거르고 나왔으면 여기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트레킹을 시작하면 된다.
내가 문경을 찾았던 10월에는 사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과 특산지답게 길에 늘어선 사과나무.
뜬금없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들이 왜 여기에..??
생각해보니 마귀할멈이 백설공주에게 건넨 독사과와 대비하여 문경 사과는 청정품 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주차장에서 조령1관문까지는 1.3km 거리다.
문경에 사과만 있는 게 아니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감나무.
문경새재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이 있는데, 임진왜란 후 지역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다 하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지만, 소를 또 키우려면 나중에라도 고치는 게 맞다.
1관문인 주흘관 성문을 지나면 좌측에 문경새재 한옥 오픈세트장이 있다.
하단의 이곳에서 촬영한 작품 목록을 보고 내가 봤던 사극 대부분이 여기서 촬영했음을 알았다.
한옥 세트장 좌측 단지는 저자와 주막, 초가 등 서민촌 구역이다.
세트장 입구에서 직진하는 중앙 통로 좌우로는 기와집이 늘어서 있고,
끝 부분엔 관아가 있다.
어~? 저건 ...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사극에서 본 광화문이 여기 있을 줄이야..
단지 우측은 궁궐 구역이다.
이 구역에 왕과 왕비의 처소 등이 있다.
1관문에서 2관문까지는 약 3km.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걷기에 좋다. 길 왼쪽의 하천과 함께 우측의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가 너무 경쾌하다.
생각보다 많은 수량(水量)에 맑기는 또 어쩜 그리 맑은지. 걷다 보면 물레방아도 있다.
길가 우측에 줄지어 있는 이 비석같은 것은 무엇?
이 비(碑)에는 현감과 관찰사들의 이름과 재직기간이 각인되어 있다. 주요 단체장 사무실에 역대 단체장 사진을 게시하는 것과 같은 재직비다.
부임하는 관찰사와 이임하는 관찰사가 관인을 건네며 업무 인계인수를 하는 장소였다는 교귀정(交龜亭).
거북이를 교환한다는 이름으로 보아 당시 관인 윗 부분 형태가 거북 모양이었을 거라 유추해 본다.
관아가 아닌 곳에서 이취임 절차를 행한다는 게 의아스러운데, 신관이 관할지역에 들어서면서 바로 권한이 이양된다는 의미였을까.
너무나도 투명한 맑은 물 속의 피래미들과 소통하며 잠시 쉬기도 하고,
작은 폭포에 시선을 뺏기기도 하다 보면 2관문이 다가 온다.
2관문인 조곡관 성루에 오르면 어떤 풍경이 보일까..
오르려 하니 출입이 제한된다. 이런 계단도 팻말 하나에 출입을 자제하는 게 일반인의 상식이고 기본 소양인데, 거리낌없이 왕궁에 들어가 남의 시선 아랑곳없이 어좌에 앉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2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3.5km. 거기까지 갈까, 말까..
길이 좋으니 가는 데까지 가다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계속 오르니 쉼터 카페가 보인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시킨 후 "아래 이정표를 보니 '책바위'라고 있던데 가볼만 한가요?"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심으로) 묻자, 돌아온 여주인의 대응에 빵 터지고 말았다.
그 : 집안에 수능 등 시험보는 식구 있으세요?
나 : 아뇨.
그 : 그럼.. 사진으로 보세요~
그런데, 묘하게 그 말에 더 끌린다.
여기서 350미터인데 이왕 왔으니 가보자..
그런데 이 길에서 의미있는 곳을 만났다.
이 작은 웅덩이같은 샘이 낙동강 발원지라고..?
오래 전 태백 검룡소에서 한강 발원지 비석을 보며 기분이 묘했었는데, 남한 최장인 낙동강 발원지가 여기라니..
물론 여러 지류가 모여 강을 이루는 것이니 다른 발원지도 있겠으나, 어쨌든 얼결에 낙동강 발원지를 만나니 마치 숨어있던 보석을 본 느낌이다.
낙동강 발원지를 지나 조금 더 가니 뭔가 있다.
앞에 깔린 바위가 책바위.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여기에 책을 올려놓고 과거 준비를 했다 한다.
쌓아 놓은 돌 틈에 작은 쪽지들이 많다. 하나 꺼내 보니 [수능 대박 기원]이란 문구와 함께 이름과 거주지가 적혀 있다.
(근데, 혹시 쪽지 꺼내 본 게 부정탄 건 아니겠지..)
이정표 상으로 3관문인 조령관까지 1.3km 남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마저..' 욕심이 좀 들었지만, 일행에 누가 될 거 같아 돌아서기로 했다.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기도굴]이란 팻말이 있다.
다소 가파른 소로를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안내글에는 이곳이 김대건 신부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가 박해를 피해 신도들과 숨어 기도를 올리던 곳이라 적혀 있다.
저 좁고 낮은 굴 안에 무엇이 있나..
호기심에 허리를 접고 오리걸음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놀랍게도 좁은 동굴 속 깊은 곳에 성모상과 십자가가 있다.
내려오며 본 주흘관 반대 편 현판에는 [영남제1관]이라 적혀 있다.
이곳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는 하천 우측으로 건너가 생태미로공원을 둘러보며 내려가는 것도 좋다.
이렇게 2관문과 3관문 중간 지점까지 다녀오는데 여유롭게 걸으며 이곳저곳 둘러보아도 오후 4시 반 전에 주차장 회귀가 가능하니, 주차장 도착 후 조금 이른 저녁을 먹거나 카페에서 휴식 후 문경역으로 향하면 된다. 약간만 서두르면 3관문까지 다녀오는 것도 가능하다.
주차장에서 문경역 가는 마지막 직행버스는 18:15.
시내를 거쳐 가는 18:05 버스를 타도 판교행 마지막 KTX를 타는데 지장이 없다.
□ 문경새재가 걷기 좋은 이유
◇ 완만한 경사 : 1관문과 2관문의 고도차는 약 140m 정도 된다. 일반 건물 45층 정도 되는 엄청난 높이 차이를 피로감없이 걸을 수 있는 이유는 140m의 높이가 3km 구간에 걸쳐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급경사 구간 없이 경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평지 같은 완만한 경사가 3km 내내 이어진다.
◇ 맨발 걷기 명소 : 의외로 어싱(earthing : 맨발로 걷는) 마니아가 많다. 손에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걷는 이들도 제법 많은데, 1관문 못미처 신발장과 족욕탕이 있는 걸 올라갈 때는 못봤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흙길이, 먼지가 안 나는 토성이 있는 것 같다.
수많은 발자욱을 태운 나뭇잎이 마치 흙 속에 코팅되어 있는 듯하다.
주차장에서 2관문까지는 왕복 8.6km, 3관문까지는 왕복 15.6km 이니 걷기에 익숙하면 크게 부담없는 거리지만, 걷기에 조금 익숙치 않더라도 다녀올 수 있는 팁이 있다.
식당가를 벗어나면 1관문을 거쳐 2관문까지 운행하는 전동열차가 있다. 한옥오픈세트장까지는 무료이고 세트장에서 2관문 구간은 유로다. 이 전동열차를 2관문까지 구간별 편도 혹은 왕복 이용하여 체력을 비축하며 3관문까지도 다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