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방법
즐겁게 살자.
편하게 살자.
나는 정말 즐겁게 살고 싶다.
주식을 하다 큰 손실을 봤을 때도 나는 즐겁게 마음 가지려 애썼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된지 2년 반동안도 나는 즐겁게 살았다.
같은 직장에 있던 후배가 나에게, 늘 웃고 다니는 게 여유가 넘쳐 보인단다.
그러면서 남들이 내가 벌어놓은 게 많은 거 같다고 그런단다.
그 후배에게 되묻는다.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가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냐?
어차피 모든 사람이 남인데, 내가 죽는 시늉한다고 돈 보태줄 사람 누가 있겠나??
인상 쓰고 다녀봤자 오히려 피하기만 하지. 아무리 힘들어도 웃고 다니면
적어도 알던 사람들이 피하지는 않잖아..."
집사람도 그런다. 당신은 너무 행복하게 노는 걸 즐기는 거 같다고.
용을 써도 안 되는 건 안된다.
용을 써서 모든 게 다 된다면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산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행위와 사고의 연속인데,
이 모든 걸 인상 쓰지 말고 짜증내지 말고 하자는 거다.
얼마 전 동호회 모임에서 한분이 내게 이런 표현을 하셨다.
삶을 참 밝게 사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편하게 살자]는 말은 안락하게 살자는 게 아니라, 복잡하게 비비 꼬면서 살지 말자는 얘기다.
복잡하게 비비 꼬는 거 - 그게 궁상이다.
나는 삶이란 운영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삶은 늘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엉킨다.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삶은 늘 명료하고 명쾌하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아름답다.. 지적이다.. 섹시하다.. 우아하다.. 혹은 맑아 보인다... 등등,
남성들이 표현하는 수사도 많고, 여성들이 남성에게 듣고 싶은 찬사도 다양하겠지만,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대했을 때 나는 "참 느낌이 좋다" 고 한다.
내게 와 닿는 그 여자의 전체적인 느낌이 좋다는데, 그 이상의 무슨 수식어가 필요한가...
간단하게 feel 이 꽂혔다는데...
간단하고 단순한 게 생각이 부족한 게 아니다.
순리대로 생활하면 모든 게 간단하고 단순해진다.
내가 글을 쓸 때 [江河]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것도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는 스스로의 다짐을 위해서다.
근데 사실, 간단명료 단순명쾌와 아무 생각 없는 것이 가끔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관과 좌우명은 다소 차이가 있는 거 같으니 조금만 더 사족을 달자.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지키려 애쓰고, 후배들에게 강조하던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디서든 내가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자]고
또 하나는,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어한다. 그러니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자]다.
21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무수히도 많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그때마다 생각한 것은 내 전임자들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던, 하던 방법을 바꾸던, 하여튼 내가 있었으므로 뭔가는 달라져야 했다.
그것은 내 존재의 의미였다.
직장에서 처음 관리자로 승진을 하던 날,
그날 나는 A4용지에다 내가 사원 시절 상사에게서 받아 기분 좋았던 상사의 말과 행동, 그리고,
반대로 상사로부터 기분 나빴던 상사의 말과 행동을 아주 하찮은 것 까지 빼곡히 적었다.
이를테면,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뒤에서 찾으면 막 피워 문 담배를 꺼야 되는 안타까움이 있다는 것 등등.
(그때는 사무실 흡연이 인정되던 시절이었고, 나도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빼곡히 적은 A4용지 두장을 일 년 동안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들여다보며 나를 세뇌시켰다.
내가 좋았던 거 남에게 그대로 해주고, 내가 싫었던 거 안 하면 된다.
그럼 만점짜리 상사가 된다는 게 내 단순한 논리였다.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게 비슷하니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부르려고 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난 그가 담배를 다 피울 때 까지 기다렸다.
그 5분 정도를 못 기다릴 정도로 세상이 급박하진 않았다.
내가 하기 싫은 건 남도 하기 싫다.
易地思之.. 네 글자를 너무 길게 풀었다.
모자란 것을 정당화시키는 데는 원래 많은 말이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