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을 개조했다는 오르세미술관.
그래서인지 오르세미술관은 종심이 무척 길고,
주로 조각상이 전시된 중앙과 좌우 전시장에 단차가 있다.
또한 좌우 전시장이 이중구조로 되어있어 관람 동선 잡기가 매우 애매하여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놓치는 곳이 많다.
6층까지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그림 조각뿐 아니라, 건물의 설계도와 의복 그리고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오페라극장 단면도까지 있는데, 그 정교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딸아이가 자신이 관람했던 좌석까지 찾아낼 정도다.
너무도 사실적이고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그림에 계속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데,
초상화도 아니고, 이런 큰 화폭에 담긴 서사적 장면에 어쩜 이렇게 영화의 스틸컷과 같은 디테일한 묘사가 가능한지 탄복하게 된다.
학창시절 배운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을 여기서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다.
흠.. 저 남자도 훗날 미투에 발목이 잡혔을지도...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는데, 6층 카페 외벽의 시계탑을 통해 멀리 몽마르뜨 언덕과 성당이 보인다.
뭘 저리들 열심히 하나 어깨 너머로 힐끗 들여다보니, 학생들이 제도기를 들고 열심히 내부 스케치를 하고 있다.
아마 학교에 제출할 과제들을 준비하는 듯.
전문적인 자세한 내용이야 온라인 상에 자료가 넘칠테고, 일반 관람객의 수준에서 본 느낌은 루브르박물관보다 친밀감이 간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개인적으로는 오르세미술관을 권하고 싶다.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고 재밌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천정이 높아 느껴지는 넓은 공간감 때문인지...
번외 시츄에이션 둘.
# 배낭이나 큰 백은 전시장 반입이 안 돼 cloak room에 맡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코트도 함께 보관시키는 이곳에 두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나이가 많은 직원의 표정이 완전 앵글리 버드다.
반면, 젊은 친구는 표정 가득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정겨운 느낌은 전해진다. 유쾌하게 일한다는 느낌이 든다.
배낭을 맡길 때 두 사람의 표정과 모습은, 세 시간여 관람후 배낭을 찾으러 갔을 때도 동일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본인의 즐거움과 상대에게 주는 즐거움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을 먹으며 이 얘기를 들은 Nico의 웃음띤 반응.
"젊은 직원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모양이네.^^"
# 전시장 입구에 각국 언어의 작품해설 번역기가 있다.
작품번호를 단말기에 입력하면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꽤나 유용한 도구이자 시스템인데, 이런 좋은 도구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압박임을 보여준, 한국인 모녀의 장면 하나.
엄마는 화가 났고, 딸은 고개를 숙인 채 시무룩하다. 대화내용으로 유추한 상황은 이렇다.
엄마가 딸에게 작품해설 번역기를 임대해줬음에도, 그림에 관심이 없는 건지 일정에 지쳤는지 작품을 제대로 보지 않고 쉬려는 딸에게 급기야 엄마의 분노가 폭발했다.
"돈이 얼만데.. 그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등등.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와 그 모녀를 또 만났다.
엄마는 분이 안 풀린 표정으로 앞서가고, 작은 딸은 엄마 옆에서 눈치를 살피며 따라가고,
미술관 안에서 질책을 받은 큰 딸은 주눅든 표정으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우리의 말 말 말.
"여행이 즐거워야지 저게 무슨 여행이야.."
"쟤에게 남는 여행의 추억은 뭘까.."
"저 애는 앞으로 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을까.."
"저래가지고 그림에 정이 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