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대학생활의 재미를 붙여가며 제깐에는 이제 뭘좀 안다고 까불대던 대학 1학년 때의 9월,
햇볕 좋은 어느 토요일 낮.
죽이 맞는 친구와 둘이 뭔가를 하고 싶은데 둘 다 주머니에 돈이 없다.
토요일 낮에 그냥 헤어지긴 싫은, 돈만 없던 젊은 청춘이다.
해서.. 둘이 학생회관 앞 잔디에 앉아 서로 아는 사람만 지나가면,
"전화를 걸려하는데 동전이 없어서..." 등등의 갖은 핑계로 동전을 모았는데
세 시간여를 그렇게 앵벌이 구걸하 듯하여 2800원 정도를 모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커피 한잔이 50원이었으니 얼마나 거금인가.
그날 우리 둘이는 그 돈으로 당구장을 들른 후 저녁 먹고, 생맥주까지 한잔 하고 헤어졌다.
이런 경우에도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썼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린 분명히 정승같이 썼다.
세 시간을 벌어 그 이상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이 즐기기 위해서는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당시 우린 [체면]을 포기했다.
젊음에게 체면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다.
그리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포기할수록 낭만이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젊음의 특권은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어지간한 것은 허물을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웬만하면 장난이고, 경우에 따라 재치로, 또 후에는 추억으로 미화될 수 있는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