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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 Aug 02. 2018

은근히 빠져드는 베기의 종소리


숙소 근처 마트를 찾았더니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문을 닫았다.

오후 6시면 영업 종료.


2년 전 노르웨이에선 6시 이후 알콜음료를 안 파는 게 신기하더니만, 여긴 아예 영업 끝.

그래도 될만큼 여기 소득수준이 높나?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만 영업이다. 세 시간 영업도 우리로선 의아하지만,

서구에서는 일요일 오전에는 거의 성당이든 교회든 나가는 게 일상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아닌가.. 이 마트 주인이 무신론자인가...?



유럽의 곳곳에는 성당과 교회가 많다.

그런만큼 가는 곳마다 종소리를 자주 듣게 되는데, 베기는 종이 울리는 패턴이 좀 색다르다.

어느 순간 종소리가 쉼없이 들리는 듯하더니, 얼마 안돼 또 들린다.

그리곤 또 얼마 뒤... 수시로 타종이 이어지는데, 듣다보니 이 종소리에 루틴이 있다.


매 정시에는 그 시각만큼의 종소리가 울린다. 1시면 한 번, 6시면 여섯 번.

그리고, 매 15분마다 또 종이 울리는데, 15분엔 한 번, 30분엔 두 번, 45분엔 세 번이다.


그럼, 1시 2시 3시 시각과 15분 30분 45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이 사람들도 생각이란 게 있을텐데, 멍청하게 듣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그냥 마구 종을 쳐대겠나.

몇 번 들어보니, 시각을 울릴 땐 톤과 멜로디가 다소 다른 종소리를 세 번 타종한 후, 시각을 알리는 종을 울린다.

군대용어로 구호를 전달할 때 예령후 본령을 전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15분이 "땡~"이라면, 1시는 '이 타종은 시(時)을 알리는 타종' 이라는 의미로 "딩~ 딩~ 딩~ 땡~~" 이런 식이다.

요거.. 듣다보면 은근 재밌고 중독성도 있어 다음 타종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아울러 시간 개념이 생긴다.

'어.. 벌써 15분이 갔네..'  '어~ 또 15분이 지났어?'  이런 식이다.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비츠나우 방면으로 호수를 끼고 걸었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가옥 형태, 언뜻 일본풍이 느껴진다.


어둠을 품는 루체른 호수의 모습이 무척 운치있다.


자꾸 기다려지는 베기의 종소리에 빠져드는 사이,

어둠도 루체른 호수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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