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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 Aug 05. 2018

카펠교보다 기억에 남은 루체른 아줌마의 고마움


리기산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5시.


해는 길고, 베기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루체른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카펠교는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스시집 인근 도로변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긴 했는데, 요금 정산기가 참으로 묘하다.
영어는 없지만, 대충 1시간에 2프랑이고 평일은 최대 2시간까지만 주차 가능하다는 얘긴데,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되고, 오로지 스위스프랑 코인만 사용 가능하다.

기계 표면과 액정화면의 숫자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찬찬히 주차구역과 주차요금기를 둘러보니 감이 잡힌다.

숫자는 도로 바닥에 적힌 주차구역 번호.

자기가 주차한 구역의 숫자를 누른 후 필요한 시간만큼의 코인을 넣으면 되는데..

문제는, 내게 스위스프랑이 전혀 없다는 거.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며 서성이는데, 옆의 문이 열리며 중년여성이 나온다.

다짜고짜 "내가 스위스프랑이 없는데,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되느냐?"고 물으니 기계를 들여다보고는 카드는 사용이 안 된단다.

그러더니 난감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자기 지갑을 꺼내 2프랑을 넣고 시간 확인을 하더니,

1시간은 짧겠다고 생각했는지 2프랑 코인을 하나 더 넣어준다. 두 시간 주차 가능.

얼결에 벌어진 일에 내가 연신 고마움을 표하자,

환한 미소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고 루체른에 온 걸 환영한다며 즐거운 시간 보내란다.


코인으로 하면 얼마 안 되는 금액같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5천원이 넘는 돈이다.

나라면 5천원을 넣어줄 수 있을까..  지폐와 동전에 대한 느낌의 차이도 무시 못 할 거 같다.

어쨌든, 스위스프랑이 없다는 말이 결국 "한푼 줍쇼~"가 돼버린 셈인데, 

아파트로 추정되는 현관문 옆에 부착된 이 입주자 중 계실, 미소가 기품있었던 루체른 아줌마.

"정말 고마웠어요~^^"


루체른의 호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시집에 들어가 스시 외에 라멘은 없느냐 물었더니, 자기네는 오로지 스시 뿐이라며,

문 밖에 까지 나와 라멘 파는 일식집을 찾아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헐~ 루체른에 대한 호감 급상승~


저녁을 먹고 찾은 카펠교는 고색창연한 지붕과 함께 건재하다. 

카펠교가 딛고 있는 루체른 호수 지류의 물도 맑았지만, 왠지 그 투명도가 예전만 같지 않은 느낌이라 아쉬웠다.

2001년에는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았던 기억이 있는데..

스위스 정부가 됐든, 루체른 자치정부가 됐든, 수질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할 듯하다.

다리 천정에 있는 판넬화들은 관리를 하는지 색감이 퇴색되지 않고 여전하다.


중앙 다리 왼쪽의 베이지색 건물은 프란치스키너 성당. 

다리 오른쪽 건물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2001년 배낭여행시 묵었던 유스호스텔이 있었던 거 같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퐁듀 레스토랑이 있었고.


예수의 성당.


카펠교 북단.

상층의 창문 처마 위에 세워진 깃봉 같은 장식이 재밌다.


카펠교 남북단 주변을 돌고 주차구역으로 돌아와 차를 빼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주차시간이 지나면 주차요금기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2시간이 지날 때까지 10분여를 기다리니,


내가 주차했던 11번에 검은 줄이 하나 생긴다.

그러니까, 12번은 주차가 정상적으로 진행중이고, 11번은 정산시간이 조금 지났고, 나머지는 정산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표시.

그럼, 내가 떠난 후 11번은 어찌 변할까?

그걸 미처 확인 못했네...


베기로 돌아오는 길, 네비에 숙소를 마킹하고 안내경로를 따라가다보니 고속도로로 몰고 간다.

이런 젠장~ 빠른 길로 안내한다고 그런 거 같은데, 거리는 더 멀고,

무엇보다, 난 호수와 접한 도로를 따라 가며 루체른 호수의 정취를 맛보고 싶었다고~~~


아내가 그런다.

루체른 아줌마 아파트 현관 앞에 꽃이라도 놓고 올 걸 그랬다고.

나역시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픈 마음은 컸는데, 그 꽃을 누가 갖고 갈 줄 알고...

고마운 배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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