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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 Aug 18. 2018

변함없는 모습에 더 정겨운 브뤼헤



1박 2일의 짧은 브뤼셀 방문을 마치고,

거의 같은 시간에 딸아이는 수업을 위해 파리로 가는 기차에, 우리는 브뤼헤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브뤼헤로 향하는 1시간 10분 동안 시선은 차창 밖 전원에 두고 있지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2001년 배낭여행시 들렀던 43개 도시 중, 독일 로텐부르크, 프랑스 남부 아비뇽과 함께

반드시 한 번은 아내와 다시 찾겠다고 손 꼽았던 세 곳 중의 하나.

브뤼헤는 [천정없는 미술관]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


17년 전 일정에 쫒겨 한나절만 머물렀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엔 다소 여유있게 2박 3일 일정을 잡았다.

볼거리만으로는 1박 2일로도 충분할 정도로 작은 곳이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정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브뤼헤 안에서는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이 필요치 않다.

단순 투어 목적으로는 어디든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범위다.


기차역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 주변의 풍광에 벌써 아내의 탄성이 나온다.

브뤼헤 역 맞은 편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운하를 따라 형성된 Hendrik Pickery는 브뤼헤가 어떤 도시인지 예고편을 보여주 듯 사람들에게 설레임을 준다. 

드넓은 수목과 잔디 사이를 고도차없이 지면과 거의 수평으로 초록을 품고 흐르는 운하에서 여유로움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역시 브뤼헤.


Hendrik Pickery의 평온함에 매료된 여행객을 맞는 Powder Tower.

배낭여행시 이리저리 걷다 이 탑을 보고 '이건 뭐지..' 했던 기억이 나는데,

명칭대로라면 분말가루 저장소겠지만, 체코 프라하의 Powder Tower와 같은 용도라면 이것도 화약을 저장했던 곳?


Powder Tower 옆 Minnewater.

네덜란드어로 minne는 사랑이라는 뜻이란다.

너무도 몽환적인 모습에 절로 셔터가 눌러지는데, 숙소에서 사진을 모니터 하면서 문득 느껴지는 데쟈뷰.


블로그의 2001년 배낭여행기를 뒤져보니 아래 사진이 나온다.

어쩜 이렇게 17년 전의 모습 그대로일까.

계절의 차이가 있음에도 2001년 배낭여행시 담았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마치 비슷한 시기에 담은 것처럼 피사체를 바라본 각도마저 비슷하다.

같은 모습에 대해 17년 전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변하지 않은 나의 감성에 스스로 흐뭇하다.

두 사진을 비교해보니, 17년 전 보수중이던 왼쪽 탑 부분이 지금은 모습을 드러냈다. 




브뤼헤의 숙소는 조금 특이한 컨셉이다.

운하에 떠있는, 정확히는 정박되어 있는 [Hotel de Barge].

여기가 입구.

체크인 후 2층 좁은 복도 끝 방에 들어가니 침대에 구명조끼까지 구비되어 있다.

재밌는 건, 밤 12시 이후에는 방에서 샤워는 물론 화장실 사용도 금지. 아마 불완전한 방음때문이 아닌가 싶다.

밤 12시 이후 화장실은 리셉션 옆의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운하 위에서 운하를 바라보며 갖는 아침식사도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다.




숙소 체크인 후 저녁식사도 할 겸 가볍게 주변 정찰(?)에 나섰다.

저녁 7시. 유럽의 상점은 일찍 문을 닫는다. 더구나 일요일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사려다가는 밤새 갈증에 시달릴 수가 있어,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롭더라도 미리 물을 사두는 게 현명한 판단.

문을 연 네팔식당의 카레라이스는 양이 엄청나다.

경제지수와 밥의 양은 반비례하는, 밥힘의 중대성이 확인되는 거 같아 씁쓸하다.

카드를 내미니, 카드 결제시는 1유로가 추가된단다.

유럽에도 오직 현금만 받는 곳도 있고,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만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도 있지만, 카드 사용시 추가금을 받는 경우는 처음이다.

현금이 없는 고객을 놓치기는 아쉽고, 카드수수료와 세금은 아까우니, 20여년 전 우리가 행했던 편법 결제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다.

브뤼헤의 야경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유럽에선 보기 드물게 일요일 밤 10시가 가까와 옴에도 영업중인 점포가 제법 있다.

여긴 웬 일이래...  늦게까지 문을 열고있는 점포의 안을 들여다보니 주인들의 틀이 나와 비슷하다.

그랬다.. 일요일임에도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는 곳은 모두 주인이 아시아인이다.

자본과 기득권이 없는 이방인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무기는 부지런함밖에 없다.

이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면서, 카드 결제시 추가금을 받는 모습까지 오버랩되니 일견 애잔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늦게까지 영업하는 줄 모르고, 우린 괜히 1.5L 물병을 세 시간씩이나 들고 다녔네..


문을 열고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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