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쇼핑을 따라 나서면 가족이 보인다
나 : 평균적인 부부와 비교할 때, 우리는 부부간에 어느 정도 대화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아내 : 우린 미주알고주알이지.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은 편에 속하는 거 같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부부의 경우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대화 외에 우리는 보조수단을 많이 이용했다.
처음에는 편지가 그 기능을 많이 담당했다.
신혼 때는 베개 밑과 화장대가 우리 편지의 우편함이었다.
신혼이 지나면서 우리의 편지는 서로의 직장으로 향했다.
편지의 내용은 말로 다하지 못한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표현이다.
아내가 교직에 있을 때, 학년이 바뀔 때면 난 꼭 아내의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주로, 새로 담임을 맡게 된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아내가 내게 보내는 편지의 양이 항상 더 많은데,
내용은 가족을 위해 애쓰는 데 대한 고마움이다.
아내의 글을 보며 가족에 대한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아내에게 많은 고마움과 함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갖곤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요즘은 SNS가 편지의 역할을 대신한다.
대화의 필요조건은 [꺼리]와 [시간]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일수록 말 할 꺼리는 많다.
아내에게 한해 나는 입이 가벼운 남자다.
아내와 마주 앉으면 그날 내게 일어난 이야기가 다 나온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결혼생활 32년 동안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나 내가 겪는 갈등에 대해서는 말해 본 적이 없다.
고리타분한 생각이겠지만, 집안의 모든 좋지 못한 문제에 대한 고통은
결론이 날 때 까지는 혼자 감내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혼자 해도 충분한 걱정거리를 불필요하게 가족들이 미리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음은 시간인데,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은 쇼핑을 같이 하는 것이다.
쇼핑만큼 배우자의 소비패턴과 기호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없다.
먹거리 장을 따라나서면 아이들의 취향과 기호식품까지 알 수 있다.
엄마들은 자신의 취향보다 아이들의 취향을 우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핑은 부부에게 많은 대화의 소재와 시간을 제공해 준다.
딸아이 중학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자기 부모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 고 하더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번쩍 들고 둘러보니 자기밖에 없더라나...
우리의 질문 : 네가 볼 때 엄마 아빠가 천생연분인 거 같니???
딸의 대답 : 그렇지 않아?? 근데 왜 다른 애들은 손드는 애가 없지...
우리의 행복한 대답 : 그게 다 네가 주책이란 얘기야.
그렇더라도 우린 서로에게 물었다.
'"우린 그래도 성공한 부분가 비여..."
딸애는 지금도 그런다. 엄마 아빠 사는 거 보면 자기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아내가 묻는다. "야~~ 엄마 아빠 싸우는 거 봐도 그런 생각이 드냐??? '
딸내미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게 다 사는 재미지~~~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
아내의 엉뚱한 걱정은, 딸아이가 세상 남편의 표준을 아빠로 보기 때문에 나중이 걱정된단다.
나에겐 좀 과분한 표현이긴 한데, 어쨌든,
딸애에 의해 붙여진 우리 부부의 영예스러운 별명은 [못 말리는 한쌍의 바퀴벌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