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함께 기다린 아빠

by 강하


29년 전.
그러니까 아들이 우리 나이로 네 살 때,
내가 기업체 대리로 근무하던 1987년도 이야기다.

당시 대한민국의 웬만한 기업은 퇴근시간이 별도로 있지 않았다.
회사 규정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매일 밤 9시가 기본이고, 그 이후가 될 때도 태반이던 시절.

하루는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거의 울먹이며 "꼭 직장생활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지...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데, 예쁘게 색칠을 한 다음 꼭 마지막에 검정색으로 덧칠을 한다.
처음 한 번은 그냥 장난으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내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검정은 왠지 암울하고 폐쇄적인 느낌을 준다.
애가 혹시 정신적으로, 혹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자폐증이나 기피증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재원이는 검정색이 좋아"
"응..."
"그래..?? 근데, 검정색이 왜 좋아??"

그다음 아이의 대답에 아내는 억장이 무너졌다.

"음... 깜깜해야 아빠 오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지며, 머리 속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생각.

'정말.. 내가 이러면서까지 직장생활을 해야 하나...'


다음 날, 출근 후 후배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모두가 동병상련... 말없는 적막이 잠시 지속되다가 한 후배가 한 마디 내던진다.
"답답한 얘기죠... 자~~ 일하시죠..."


어쩌다 이 얘기를 할 때면, 아직도 "깜깜해야 아빠 오셔..."라는 대목에 목이 잠긴다.


이미 그 시절 나 정도의 나이로 성장하여 모든 걸 이해할 입장이 됐지만,
아빠를 필요로 할 시기에 충분하게 시간을 나눠주지 못 했음에도,
건강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고 많이 고맙다.


얘들아~~~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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