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 <구의 증명> 중에서
사랑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나는 그건 말이 되어 나와버리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언어 따위를 통해 뇌로 정의하려 하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비겁하게도 그럴싸한 대답이 듣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물어보곤 한다.
<구의 증명>을 읽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봤다. 여전히 사랑을 정의할 수 있는 적합한 언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뼘짜리 기억이 누군가의 마음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 욕심이 어쩌면 사랑의 마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이가 구를 먹음으로써, 그렇게 살아서 구를 기억함으로써, 구의 사랑은 '증명'된다.
기억을 움켜쥐고자 하는 그 발버둥이야 말로 영화 <본즈 앤 올>의 티모시 샬라매가 'Bones and All'을 외친 이유이자,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정우성이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는 까닭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깊은 바다에 핸드폰을 던지는 일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시체를 뼈까지 전부 먹어 치우는 일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이란 처음 본 사람인 양 아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일이다.
인간은 정말 바보 같은 이유로 사랑을 하고, 더 바보 같은 이유로 사랑을 저버린다. 세상의 사악한 사랑 영화들은 우리가 더 지혜롭고 더 아름답고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에 걸쳐 어떻게 해서는 사랑은 이루어져 왔고, 동시에 스러져 갔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에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우린 그렇게라도 같이 있어야 해.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구의 증명> 중에서
지하철이라 참으려 애썼지만 저 대목에서 나는 울고야 말았다.
언젠가 담이가 구를 다 먹어치우는 날이 오겠지.
나는 현실적인 조언은 못해주는 천생 NF인 사람이라서, 더 이상 구의 모습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날의 담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한 독립군이 감옥에 갔다고 해서, 떠난 그와 남겨진 동료들 간의 마음이 서로 멀어졌을까?
오히려 더 강한 유대감을 가졌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있다.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지만 그것을 가슴 깊이 품고 계속 걸을 수 있기를!
7월이 어느새 절반이나 지났네.
그래도 영화제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얻었다.
'기억'해야지!
에필로그는 담이가 이 노래 듣길 바라는 마음에
https://youtu.be/i7c1KW19sL8?si=w7HOeNjFMk3lL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