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All at once!
붙잡지 않으면 유영하다 잠자코 떠날 올해의 영감들을 짧게 글로 아로새겨본다.
사건과 사진을 월별로 나열하려다, 그건 멋없는 것 같아 진실과 진심을 쓰기로 방향을 틀었다. 존경하는 김소미 기자님처럼 꼿꼿하고 품격 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늘 내가 글을 통해 표현한 것과 표현된 것의 차이는 나를 괴롭게 한다. 하지만 내 브런치의 맛은 전자의 솔직함에 있으니 그런 거 의식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한 해를 돌아보기로 했다. 줄 건 줘, 사소해
올해도 영화는 숱하게 봤지만 단일한 작품을 고르라면, 고민 없이 <베니스에서의 죽음>. '아름다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라고 믿는 예술가 구스타프가, 휴가를 떠난 베니스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을 가진 소년 타지오를 만난다.
아름다움과 추함, 이상과 현실, 구원과 죄의식, 빛과 어두움, 예술과 예술가.
끊임없이 전자를 갈망하던 구스타프의 심연은 말러 교향곡 5번을 경유해 후자에 잠식된다. 제목으로 예견된 이 비극이 그토록 나에게 개인적으로 와닿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를 오래 생각했다.
추락하면서 위를 바라보는 것. 거짓 속에 살면서 진실을 갈망하는 것.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것. 모두 내가 진정한 예술을 하게 되는 날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 더 구체화하자면 성녀가 되기를 바라며 매일 밤 속죄하는 창녀, 담배를 끊게 해달라고 담배를 피우며 기도하는 흡연자를 다루는 이야기. 그 한심하면서도 처연한 발버둥 속에도 분명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미'를 동경하고 갈망하는 '추'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마치 내 글처럼). 생각해 보면 그 모순 속 역동성이야 말로 내가 진정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언어화되지 않은 채로 맘 속 깊이 묻혀 있던 심상들이, 타지오의 머리를 쓰다듬는 저 손짓에 오롯이 담겨 있었기에 내가 이 작품에 그토록 매료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4년의 나는 여전히 모자랐다. 때때로 추했다. 행동은 부족했고 가장 필요할 때 나의 이상은 부재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추구하기를 중단하지 말자, 그 투쟁에도 아름다움이 있으리니. 2025년에도 내 주위엔 아름다움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없다.
God bless my fam!
올해는 '사소해'라는 말을 밥먹듯이 썼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미움, 분노, 슬픔도 길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믿음이자 주문이었다.
실제로도 인생은 사소함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거대한 터닝 포인트가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모먼트, 선택이 우연을 만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늘 모를 일이다.
그 사소함의 힘을 크게 느낀 한 해였다. 내가 파리 시내 프랑스문화원에서 박찬욱 평론집을 골라 읽지 않았더라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의 존재도 몰랐겠지. 그러면 부국제도 레오 카락스와 만남도, 꽤 괜찮았던 크리스마스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꽤나 내 삶의 큰 조각을 차지하는 소중한 인연들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지극히 사소한 책 선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참 귀엽고도 웃긴 일이다.
코엔 형제는 일상과 우연의 맞닥뜨림을 통해 늘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걸작들을 만들어 내지만, 우연이 늘 불행과 닿아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 사소함이 빚어낸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게 사소함을 예찬하던 중 베를린 영화제에서 놓쳤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이 개봉했다. 요즘 영화관 티켓값 비싼 것도 사소하니까 당연히 보러 갔다.
지역 사회에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수녀원장의 압박을 수용하고 사소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것에 맞설 것인가. 흔한 도덕적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교훈극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영화가 최후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의 과정 어려움을 곡진히 전하려 했던 점은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는 다른 의미에서 '사소함'을 사색하게 한다. 사소함의 기저에 있는 것, 사소함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하여. 예술가가 양보하지 않아야 할 신념이 있듯,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의도 있음을.
역사 속 위인들처럼 비장하고 커다란 실천은 하지 못할지언정 나의 일상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처럼 사소한' 행동들이 틔울 변화를, 그 작은 커다람을 생각했다. 작은 감사함의 표시, 인사, 응원의 메세지. 사소하니까 못 할 이유도 없는 그것들을 외면하지 말아야지.
원래 올해의 영화, 책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겨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마냥 급 마무리. 외면할 수 없는 마지막 영화 하나만 언급하려고 한다. 파얄 카파디아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엔딩 크레딧 올라가고 조용히 훌쩍이다, 바로 그린룸으로 돌아가기가 부끄러 한참을 서성이던 영화의전당 샛길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도의 도시 뭄바이에서 그려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인데, 제목이 커다랗게 스크린에 새겨지는 순간의 감동은 정말... 영화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극장을 나오기 전과 후, 세상을 다르게 감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꼈다.
12월의 대한민국에 참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어둠이 잠식한 듯한 이 현실 속에는, 꼭 반짝이는 별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먼발치에서 넌지시 우리 일상을 지탱해 주고 있다. 이제 빛이 깃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각자의 일상 속에 잠든 사소한 불씨에 실천이라는 날숨을 불어넣을 때다. 그것이 무엇이든, 흔들리는 촛불도 어둠을 밝힐 테니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사소한 안부조차 선뜻 묻지 못하는 저라서 미안합니다. 이 글의 에필로그를 빌려 안녕을 전하네요. 최진영 작가님은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 한 편의 소설을 쓰신다고 하는데 저는 무얼 바라 이 글을 썼을까요. 저도 참 궁금합니다.
27이라는 숫자의 마침표 앞에서도 여전히 저는 리버풀 경기에 일희일비하고 있네요.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을 보며 훌쩍이는 것도 변함없고요. 그래도 더 읽고 보고 느낄수록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인 제가 맞을 내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기대감을 품고 있는 해인데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내년을 맞으실지 궁금하네요.
누벨버그 거장 장 뤽 고다르 선생님께서 제목으로 외치셨죠, <네 멋대로 해라>. 저는 요즘 이 말이 쏙 맘에 듭니다, 물론 영화도 좋지만요. 일시적인 감정이 괴롭힐 때면 사소해 크게 내뱉고 나의 고유한 멋을 믿어 봅시다. 아무리 삽질은 해도 내가 진 적은 없다고, 단단한 내력이 있으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되뇌며.
(아, 내년부터는 더 애정을 담아 글을 쓸게요. 나잇값 못하는 필력에 각성이 필요해서 일단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