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가족끼리 각자의 프로필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습니다.
우연히 <흑백요리사>를 보려고 넷플릭스 접속했다가 아내의 프로필로 로그인을 했거든요. 그랬더니 같은 넷플릭스인데도 프로필에 따라서 추천하는 화면이 너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아래 캡쳐 화면에서 차이가 보이시나요?
정말 각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모습입니다. 저는 액션이나 스릴러, 애니메이션 같은 장르로 구성되어 있고, 아내는 로코 계열의 드라마나 영화, 요리나 예능 쪽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게 다 알고리즘 때문인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모한 추천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의 넷플릭스 추천 화면
아내의 넷플릭스 추천 화면
장대익의 <공감의 반경>을 읽다가 알고리즘에 대한 챕터가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어떻게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또 극복해 나갈 수 있을 지 아주 잘 설명이 되어 있더군요.
오늘 수요레터에는 알고리즘과 공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알고리즘은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AI 기술의 도입으로 점점 더 고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속성은 변함이 없죠. 알고리즘의 핵심은 마음읽기 (Mind Reading)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려는 노력과 기술이 SNS과 OTT플랫폼의 알고리즘입니다.
마음을 읽어내기위한 알고리즘은 크게 2가지의 필터링을 통해 구현됩니다. 하나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 (CBF : Contents Based Filtering)과 협력 필터링 (CF : Collaborative Filtering) 입니다.
콘텐츠 기반 필터링은 사용자의 프로필과 콘텐츠의 선호에 대한 분석으로 통해 사용자 아이템 기반의 추천을 해주는 방식입니다. 초기 넷플릭스가 이용자들에게 영화를 추천할 때 사용한 방식이 바로 콘텐츠 기반 필러링 기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사용자의 프로필과 아이템을 작성하고 분류하는데 많은 노력과 리소스가 투입이 되고 주관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협력 필터링 방식은 사용자들의 과거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서 유사한 패턴을 가진 다른 사용자들에게도 유사한 콘텐츠를 제안하는 형태로 동작됩니다. 훨씬 더 데이터 자체의 분석에 의존하는 필터링 방식이죠.
콘텐츠 기반 필터링, 협력 필터링 두 가지를 혼합해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필러팅 방식으로 더 정교화되고, AI 분석 방식이 도입되면서 말 그대로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하는 알고리즘이 가능하게 되었죠.
하지만 알고리즘에는 결정적인 한계와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추천 시스템들은 사실상 사용자의 과거 행동과 성향을 '넘어서는' 추천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감의 반경> 중에서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반향실 효과와 필터 버블 효과를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반향실 효과란 방안에서 얘기를 하다보면 그 목소리가 다시 내 귀에 들리고 그 목소리가 계속 공명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그들끼리만 공감할 수 밖에 없죠.
필터 버블 효과는 비슷한 콘텐츠의 늪에 빠지는 증상을 말합니다. 유사한 내용들의 거품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효과들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서로 비슷하고 익숙한 환경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질감이 없으니 이런 환경에 더 깊은 친밀감을 가지는 거죠.
이런 성향을 하나의 방향으로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편향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성향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사회적 의사 결정자로서의 인간 심리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도 이 책이 선사하는 흥미로운 인사이트 중 하나 입니다.
1950년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솔로몬 애쉬는 타자가 개인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중요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방 안에 6~8명의 실험참가자들이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두 종류의 카드가 제시됩니다. 하나의 카드엔 세로 선이 하나 그려져 있고, 다른 카드엔 A B C 로 3개의 다른 길이의 선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 개의 카드에 그려진 선의 길이를 비교해서 A B C 중에서 어떤 게 같은 길이의 선인지 답하는 룰입니다. 사실 유치원 아이도 답변할 수 있는 정도의 너무 심플한 게임이죠.
처음에는 계속 정답을 맞히다가 중간 이후부터 한 참가자를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이 엉뚱한 길이의 직선을 정답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한 참가자만이 진짜 실험대상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참가자로 위장한 실험 조교들이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너무 당황하죠. 이게 뭔가 싶죠. 정답은 너무 명확한데,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선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쉬 교수팀은 너무 명확한 사실 앞에서 잘못된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죠.
하지만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실험 대상자 중 무려 75%가 적어도 한번은 다른 사람이 선택한 오답에 손을 들었으니까요.
심리학에서 이런 사회적 심리 현상을 동조 (Conformity) 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맞춘다는 의미이고 어떤 특정인이나 집단으로터 압력을 받아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따라하면 심리적 부담이 줄어듭니다. 편향을 통해 굳어진 의견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더욱 안전하다고 느끼게 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심리 상태를 비슷한 타인들과 콘텐츠들 속으로 동조시키고 이런 편향을 공고히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죠.
결국 우리는 그 편안함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무한정 소비하게 됩니다.
동조의 힘을 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애쉬 교수는 실험을 조금 더 진전시킵니다. 이번엔 분위기를 만드는 조교들 중 한 명에게는 정답을 얘기하고 나머지는 잘못된 답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랬을 때, 실험 참가자는 자신과 같은 정답을 한 명이라도 확인하는 순간 동조 횟수, 즉 잘못된 답을 말하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교 중 한명이 정답이 아니라 다른 오답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단지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가 존재했을 때에도 동조의 경우의 수가 꽤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한 사람이라도 이견을 내는 경우, 집단의 압력은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성향도 이러한 얼마나 동조에 휩쓸리게 되는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많은 사람과 연결이 느슨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네트워크가 촘촘한 사람의 경우에 동조의 경향이 높게 나타난다고 하죠.
얼마나 사람들과 연결성이 많으냐를 네트워크 밀도라고 부르는데, 네트워크 밀도가 동조의 경향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이런 두 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개방적 알고리즘의 가능성을 재고해 보면 어떨까요?
네트워크 밀도를 낮추는 것 그리고 소수의 의견이나 익숙하지 않는 경험이 추가되었을 때, 단단하게 묶여 있던 동조의 그립을 느슨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네트워크 밀도를 낮추는 것은 SNS 상에서 보면 친구를 줄이고, 구독이나 좋아요를 덜 누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상 SNS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방법이죠. 현실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성공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플랫폼 기업에서는 절대로 가지 않을 방향입니다.
소수의 의견과 자신의 취향이 아닌 새로운 것들을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우연이라는 요소를 알고리즘 속에 추가하는 거죠.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뜻밖의 새로운 발견을 기존의 추천 알고리즘에 적당하게 넣어두는 겁니다. 성향과 반대되는 콘텐츠나 피드를 추천해도 되고, 아니면 그냥 랜던하게 간혹 보여줘도 될 겁니다 .
개방적 추천 알고리즘은 과거의 의사결정과 성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이질적 네트워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공감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공감의 반경> 중에서
하지만 불행히도 플랫폼 회사들은 이러한 개방적 추천 알고리즘을 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 플랫폼의 목적은 사용자 개인의 역량과 지식, 성장이 아닙니다. 오로지 더 많은 시간을 플랫폼에 머무르며 더 많이 연결되고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이들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데이터로 증명된 고도화된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세렌디피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해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알고리즘 해킹을 시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취향이 아닌 다른 영화를 선택해서 본다거나, 유튜브에서 그간 전혀 보지 않았던 분야의 콘텐츠를 찾아보는 겁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의 글에 좋아요나 반응을 남기는 거죠.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에게 새겨져 있던 특징들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취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가 하고 알고리즘이 헷갈리는 거죠. 그래서 새롭게 선택하거나 좋아요를 누른 성향의 콘텐츠들을 간혹 우리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할 겁니다.
고정관념과 편향에서 벗어나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공감의 반경이 비로소 넓어지게 됩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공감의 반경인지 아시겠죠? 사회적 갈등과 오해는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감의 범위가 너무 협소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라고 저자는 진단하죠. 내 것과 우리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타인을 사물화하게 되고 터부시하는 문화가 자리갑게 됩니다. 나와 우리가 아니면 다 틀리다는 생각이 갈등과 반목을 유도하죠.
그런 의미에서 공감의 반경을 넓혀가는 시도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알고리즘의 틈을 깨는 것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주말엔 넷플릭스에서 아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 한편 보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