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에서 타로를 본다
낮에 혼자 도서관에 다녀왔다. 시부모님께서 틈을 내 둘째를 봐주신 덕분이다. 이유식과 분유, 간식, 기저귀와 여벌 옷, 쪽쪽이 등으로 바리바리 채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첫째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뒤, 둘째까지 시댁에 맡기고서야 시작된 나만의 봄.
5년 만이다.
책 속에 묻혀 끊기지 않는 낮시간을 보내본 건.
(4시간 남짓이었지만, 내겐 황금 같았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어려웠던 도서관은, 처녀 시절 내겐 타로집 같은 곳이었다. 삶의 고비를 맞닥트릴 때마다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을 뽑았다. 책은 주로 위로를 건네주었지만, 때론 갈팡질팡 거리는 마음에 내비게이션을 달아주기도 했다. 수십만 권 중 뽑아 든 한 권의 책은 내겐 신점과도 같았다.
탈락, 탈락, 탈락.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기회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다정한 단어로 채운 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찢겨간 마음을, 시 한 편이 아물게 하기도 했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고서야 붉게 익었을까, 얼마나 모진 나날을 보내고서야 둥글게 다듬어졌을까.
시를 다 읽어 내린 내 얼굴은 대추처럼 달아올랐고, 내 몸은 대추 한 알보다 작아지는 걸 느꼈다. 고작 서류탈락 몇 번했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흘린 눈물방울은 대추 한 알보다도 작고 초라했다.
경험치가 부족해 픽픽 쓰러지기만 했던 20대 청춘을 단단하게 동여매준 이 시는 고된 육아 중에도 동아줄이 되어주곤 한다.
둘째를 출산하자마자 회사 사정으로 2조 2교대 근무에 들어간 남편. 하루 13시간 근무로 얼굴 볼 시간도, 주말도 없이 일하는 남편 덕에 육아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됐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를 보내고 체력도 여유도 고갈돼버린 내가 찾은 곳은 또다시 도서관이었다.
주말에 잠깐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서점에도 가고,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나오기도 했지만 진득하게 책을 읽으러 가는 건 첫째를 출산하고 처음이었다. 햇수로는 5년 만이다.
오늘은 어떤 타로 카드를 뽑게 될까.
점잖게 꽂혀 있는 책들 사이를 한참 동안 어기적거리다 드디어 마음을 간지럽히는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냉큼 집어 들어 포근한 바람이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