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사건을 돌아보면, 이름이 안 알려진 공헌자나 인재들이 뒤늦게 조명받는 일이 간혹 있잖아요. 이 작품 <히든 피겨스> 역시 1960년대에 숨겨졌던 위대한 분들의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사건에서 떠오르는 위인, 이라고 하시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후쿠시마 원전 참사 때 말입니다.전문가들이 속수무책이던 상황에, SNS 통해 모인 전 세계 해커들과 엔지니어들 덕분에 광범위한 방사능 수치 측정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곳에 숨겨진 인재들이 참 많이 계셨는데요, <히든 피겨스>에서는 우주선에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과 그것에 영향을 끼친 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의 우주선과 관련된 것이라면, 미국과 러시아가 한창 우주 개발로 경쟁하던 때 말씀이십니까?
네. 바로 NASA 최초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인 '머큐리 계획'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고, 이때 투입되었던 수학 천재 캐서린 존슨,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엔지니어 메리 잭슨 세 분의 이야기예요. 세 분 모두 여성이고, 90대 연세로 살아계시다가 2020년 2월, 안타깝게도 캐서린 존슨 별세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죠. 인류에게 우주로 가는 문을 열어주시고 명예롭게 별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은 아직 살아 계시다는 건데, 실제 인물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는 말씀이네요.
그럼요. 생생한 실화죠. 책으로 먼저 나왔다가 영화화되었는데, 개봉 후 당시 현직이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극찬을 해서 미국에선 굉장한 유명세를 탄 작품이었죠. 제작비 2500만 달러, 마케팅비 6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제작했는데, 개봉 시기 극장을 통한 총수익으로 2억 1446만 달러를 기록합니다. 순수익 9550만 달러로 대성공이었죠. 반면 국내 개봉 시에는 극장도 많이 잡지 못하는 등 흥행에 부진한 성적을 보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 여러 영화사이트나 어플을 통하여 이 작품을 만나는 분이 늘고 있습니다. 적극 추천드리는 명작입니다. 청소년에게 권하면 더 좋겠네요.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_ 이미지 출처: 구글
실화라니 더 궁금해지는데, 미국의 1960년대라면 굉장히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 아닙니까?
바로 그 부분이 주제가 되고 있어요. 앞에 말씀드린 '숨은 인물 세 분'이 바로 흑인 여성인데요. <노예 12년>이라는 작품이나 <링컨> 같은 영화를 볼 때는, 제목으로 부터 이미 인종차별을 다루는 내용일 것이라고 각오를 하게 되는데, <히든 피겨스>는 내용 자체가 미국 항공우주국인 NASA를 배경으로 한 데다가, 비교적 사회 지식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차별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과 없이 인종차별을 행하는 장면에서 충격이 많이 컸던 작품이죠.
전 세계에서 상영될 것을 알고 제작했을 텐데,작품에서인종차별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니, 한편으로는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세상에 드러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특히 NASA에서 벌어진 일을 낱낱이 담은 채 세상에 내놓아서, 관객도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많은 찬사를 던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미국은,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린 당시의 '소련'에 위기감을 느껴서 로켓 발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때였죠. 이때 로켓 방정식을 푸는 수학 천재 캐서린이 스카우트됩니다. 정말 중요한 자리에 스카우트된 것인데도, 캐서린의 첫 출근 날 동료들은 아주 당연히 청소부겠거니 생각하고 쓰레기를 치우라며 심지어 쓰레기통을 쥐어주기까지 합니다. 뭔가 잘 못 소개되었다고 생각한 캐서린이 자신은 청소부가 아니며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될 동료라고 설명하자, 모두가 그럴 리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죠.
"여긴 백인들만 일하는 곳이야."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_ 이미지 출처: 구글
첫날부터 당혹스러웠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보다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될, 능력이 훨씬 뛰어난 캐서린인데,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대우가 지나치군요.
게다가 화장실도 백인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죠. 멀리 떨어진 건물에 흑인 화장실이 따로 있어서, 캐서린은 일을 하다가 말고 800m나 되는 거리를 뛰어서 흑인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한 뒤 다시 800m를 달려와야 했어요. 어느 날 사무실 내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는데, 백인 식수대에 감히 흑인이 손을 댔다고 모두 불결해하며 사과를 요구하죠.
전염병 환자도 아닌데, 그 당시 어떤 식으로 차별이일반화되었는지는모르겠지만, 사람 대 사람의 대우가 아닌 것 같아 좀 불편하네요. 캐서린이 그 와중에도 일은 했을 텐데,업무능력으로 인정받았다면 대우가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인정받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어요. 밤새워 계산하고 결과를 제출해도, 문서에 흑인 이름을 기록해선 안 된다며, 상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해버리죠. 그러니 아무도 캐서린의 능력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캐서린에게 업무지시를 내릴 때에도, 우주에 관한 정보를 흑인에게 줄 수 없다며, 중요한 문장은 매직으로 검게 칠해버린 뒤 지시를 하죠. 그러니 캐서린이 아무리 일을 잘하려 해도 지워진 문서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었던 거죠.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지점을 정확히 직접 계산하는 능력이라면, 그 로켓 방정식은 가장 중요한 핵심업무인데요.
그렇죠.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핵심업무죠. 어느 날 '머큐리 계획' 총 지도자인 백인 남성 '알 해리슨'이 어떤 돌발적상황에도 신속히 오차 없이 계산하는 캐서린을 주목하기 시작하죠. 그러다가 긴박한 상황에도 종종 자리를 오래 비우는 캐서린을 이상히 여기고 질타합니다. 그때 캐서린이 말하죠. 이 건물에는 흑인 화장실이 없다고. 그제야 800m나 떨어진 화장실을 항상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총 지도자 알 헤리슨이, 불같이 화를 내며 건물 내에 달려있는 화장실 푯말을 부수어버려요.
"나사에서는 모두 같은 색 소변을 본다!"
캐서린은 감동하고, 이때 몇몇의 백인들은 마음에 울림을 느끼죠.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_ 이미지 출처: 구글
단지 화장실을 함께 쓰도록 푯말 부수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는다 하니, 남에겐 당연한 일이었던 것인데, 참, 기뻐해야 하는 게 맞는지 마음이 씁쓸합니다. 아까 세 분의 여성이라 하셨는데, 나머지 두 분이 겪은 이야기까지 들으면 얼마나 더 무례한 사연이 많이 나올지 걱정됩니다.
프로그래머였던 도로시 본은 컴퓨터 서적을 보려 해도 흑인 출입금지 도서관만 있어 책을 볼 수 없었고, 엔지니어였던 메리 잭슨은 기술을 배우려 해도 흑인 출입금지 학교밖에 없어 배움의 기회를 얻지도 못했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핍박이 있는 만큼 반전은 정말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고난을 끝내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을 때 일어나는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우주비행사 글렌까지 등장해서 우리를 일깨우는 실화라는 점, 실제로 고난을 극복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린 이 작품을 통해, 내 안의 용기가 활활 타오르며,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 혹은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반드시 필요한 한 알의 특효약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요. 반드시 보시라고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 스틸컷 _ 이미지 출처: 구글
결국 처한 환경에 안주하지 말아라, 장벽이 높아도 뛰어넘어라, 넘지 못하여도 도전은 너의 몫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