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남성분들의 로망일지도 모르는데요. 꿈꾸던 여인, 100%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게 되는 한 남자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꿈꾸는 건 자유잖아요. 그런데 꿈꾸던 여인, 심지어 100%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게 된다. 가능할까요?
가능해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죠. 어느 정도로 완벽한 이상형이냐면, 구체적인 행동이나 좋아하는 취미, 어떤 생각을 주로 하고, 어떤 표정을 자주 짓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상상한 그대로의 이상형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 <루비 스팍스> 스틸컷 _ 이미지 출처: 네이버
갑자기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남자가 얼마나 멋졌기에 다 갖춘 꿈 꾸던 이상형을 만나게 되었을까. 또 하나는 남자 꿈의 기준이 대체 얼마나 낮았기에, 100프로 다 충족하는 이성을 만났을까.
재밌네요. 영화 속 주인공인 남자는 열아홉 살에 베스트셀러를 내고 천재 작가라는 별명이 붙은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 후 5년이 넘도록 펴낸 작품도 없고, 친구도 없는 사람이죠. 작가와의 만남이라든지 대중적인 자리에 나서야 할 때는 대인기피증이 와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사실상 인생 낙오자인데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원하는 것은 또 매우 구체적이었죠.
그렇게 구체적으로 많은 요구사항까지 다 맞는 이성을, 인생 낙오자인 캐릭터가 만나게 된다?
네. 국내에서 2018년 5월에 개봉했던 작품이에요. 남자 주인공 캘빈 역에 폴 다노, 루비 역에 조 카잔 배우인데, 두 사람이 실제로도 연인 사이라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또한 이 영화의 감독도 부부 감독이어서, 남성과 여성 입장을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죠. 캐빈은 천재 소설가라는 별명은 있지만, 실제로는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며 외롭게 지내고 있는데, 정신과 상담 중에, 의사가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글을 써서 다음 진료 때 제출하라고 하자, 위대한 작품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 캐빈이 가볍게 숙제를 시작해요.
첫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했으니,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글을 안 쓰고 있었군요? 캐빈이 다시 글을 쓰도록 의사가 현명한 숙제를 냈네요.
네. 캐빈은 평소 꿈꾸던 점을 다 갖춘 이상형의 여성을 만들고는 루비 스팍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키는 얼마, 머리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 험프리 보가트와 존 레넌을 좋아하며, 내 가족에게 잘하고, 요리도 끝내주며 부지런하고, 항상 웃고, 내 강아지를 산책시켜준다.
평소에 원하던 것들을 줄줄이 나열했으니까, 뭔가 마음도 한결 즐거워졌을 거 같은데요? 캐빈이 슬럼프라고 느낀 감정이라든지, 평소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았을까요?
네. 타자기로 작업을 하던 캐빈은, 오랜만에 멈추지 않고서 작업을 합니다. 꿈에서만 만나던 아름다운 루비와의 러브 스토리를 원하는 대로 맘껏 써나가죠.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숙제를 마친 캐빈이, 숙제를 챙겨서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집 안에서 인기척이 나요. 뭐지? 하고 의아해하는 캐빈에게 이번에는 어디에 가냐고 묻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죠.
혼자 사는 집, 그것도 밖에서가 아닌, 나의 집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것도 친근하게 ‘어디 가냐’고 묻는다면, 섬뜩합니다. 굉장히 놀랐을 것 같아요.
캐빈이 소스라치게 놀라죠. 잘 못 들었겠지 생각하며 둘러보던 캐빈은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또 비벼요. 꿈에서만 보던 루비가 생긋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곤 캐빈에게 외출하지 말고 자신과 있어달라고 얘기합니다.
영화 <루비 스팍스> 스틸컷 _ 출처: 네이버
보통 작가들이 몰입해서 쓰다가 보면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죠?
그렇죠. 캐빈도 바로 그런 것이 왔다 생각하고는 다시 현관을 나서요. 그때 루비가 그럼 함께 가자며 너무 예쁘게 다가오는 거죠. 겁에 질린 캐빈은 의사에게 전화해서 큰 일났다, 증세가 심해져 이제는 환상마저 보인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나 결국 루비 때문에 병원을 가지 못한 캐빈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루비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되는데요, 행복한 루비의 표정과 달리 캐빈은 자신의 증세가 악화되었다는 생각에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걸어요. 그런데 거리에서 마주친 행인이 불쑥 루비와 인사를 하는 거죠. 다시 한번 깜짝 놀란 캐빈은 행인에게 루비가 보이냐 묻고, 가는 곳마다 루비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서서히 루비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돼요.
거리의 사람들도 허상인 건 아닐까요? 루비가 어떻게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인지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지금 캐빈의 옆에 루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캐빈이 이제 기분도 좋아지고, 증세도 좀 완화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의 외모든 뭐든 내세울 게 없다고 여기던 캐빈은 갑자기 등장한 꿈의 여인이 사랑을 주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영화 <루비 스팍스>_출처:네이버
외출에서 돌아온 뒤 친형에게 연락해서, 소설 속 주인공이 진짜 나타났다고 얘기합니다. 캐빈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염려하며 곧장 형이 달려오는데요, 형마저 실제로 루비가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리곤 캐빈을 구석으로 데려가죠.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형을 속이고 만난 것이냐, 다그치면서 저토록 예쁜 사람이 무슨 이유로 너를 만나겠느냐, 저작권이든 무엇이든 분명히 목적이 있지 않고는 너를 만날 이유가 있냐며, 조 심하라고 조언을 합니다.
형의 말이 조언인지 상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의사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여인에 대해 글을 쓰라고 숙제를 냈고, 그 글 속 루비가 실제 나타나 조건 없이 캐빈을 사랑하니, 형 입장에서도 당연히 믿기지 않는 것은 이해 갑니다. 아무래도 동생이 상처 입을까 걱정이 되니 그런 조언을 한 것이겠죠.
어느 날 모임에 간 루비가 캐빈에게 늦겠다는 전화를 하죠. 알았다고 쿨한 척 끊긴 했지만 곧장 캐빈은 초조합니다. 루비 혼자 두기엔 루비가 너무 예쁘단 말이죠. 캐빈은 쿨하고 싶기에, 루비에게 집으로 돌아오란 소인배 같은 말은 못 하겠고, 그렇다고 기다리자니 불안해서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작업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곤 타자기를 꺼내죠. 소설 속 루비의 성격을 수정합니다. ‘루비는 외출해서도 캐빈만을 생각한다.’ 고치자마자 루비가 달려들어와요. 캐빈의 목을 끌어안으며 이야기하죠. '외출해도 내 머릿속엔 온통 당신 생각뿐이었어.'라고 하면서요. 캐빈은 행복해서 웃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캐빈만 바라보는 루비의 사랑을 집착으로 여기게 되고 다시 타자기를 꺼내죠.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전지전능한 작가 입장인 캐빈은 창조주가 되어 타자를 치고, 창작물인 루비는 자유 의지 없이 캐빈의 생각대로만 행동해요.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츰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죠. 상대에게 나를 맞추기도 하고요. 그 기준을 어떻게 두면 좋은지 맞춘다는 것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인지, 그것이 정말 진정한 행복은 맞는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아주 예쁜 형태로 우리에게 던지는 영화입니다. 러닝타임도 그리 길지 않으니 지금 바로 루비 스팍스 보시죠.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훌륭한 작품이랍니다.
영화 <루비 스팍스> _ 출처: 네이버
코믹한 판타지 영화쯤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남기는 의미가 큽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내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면, 글쎄요.
그 끝에 오는 잠깐의 기쁨이 과연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내 뜻에 맞게 상대를 바꾸려는 것보다는, 상대가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되새겨볼 수 있는 영화 <루비 스팍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