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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zMe Jan 19. 2021

안경

무비에게 인생을 묻다. 51

제목이 안경이네요.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달리하라, 뭐 그런 정도의 의미인가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라는 쪽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요. 이 작품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 한 여성의 인생을 만나보기로 해요. 지쳐버린 마음이나 생각에, 청정한 쉼의 공기를 불어넣어 줄 작품이거든요.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쉼을 준다. 혹시 여행에 관련된 영화일까요? 자연 속에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자연의 싱그러움과 무한한 자유를 보여주며, 쉼을 선사해주는 훌륭한 작품들 있죠. 그런데 <안경>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에, 내가 실제로 여행 다녀온 거 아냐? 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랄까요. 보았을 뿐인데 이토록 휴가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구나, 하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냥 영화를 봤을 뿐인데 마치 여행을 진짜 다녀온 느낌이란 거죠? 그만큼 힐링이 되었다는 말씀 같네요.

우리나라 30대부터 60대 사이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기관이 실험을 했대요. 조용한 휴양지에 도착 후, 핸드폰 없이 혼자 쉬도록 하고는 심리 체크를 했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대부분이 '뭔가 해야 하는데.', '집에 전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듭니다.' 등의  불안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항상 쫓기듯 살며 제대로 휴식을 갖지 못했다는 증거라. <안경>의 주인공 역시 휴식이 뭔지 몰라요. 그저 이슈가 되는 여행지나, 유명 관광지로 떠나는 것만이 진정한 휴가를 보내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결국 영화의 끝에서는 말합니다. 나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다,라고 말이에요.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여행이란 단어만 들어도 곧장 자유, 일탈, 휴식, 호흡, 사진 같은 낭만적인 단어들이 줄줄 떠오르고, 떠나기 전날부터 들뜨지 않나요. 아니지 여행을 계획 잡은 날부터 이미 흥에 겹고, 짐을 챙기면서는 뭐, 이미 여행지에 마음이 먼저 도착해있죠. 그렇게 이미 힐링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매일매일이 여행 같은 하루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인공 타에코도 여행은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내켜 떠나는 것이지만, 이 느낌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겠죠?라는 질문을 해요. 타에코는 빡빡한 일상에 지쳐 휴가를 떠나게 되는데요. 큰 마음먹고 이번에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가 봅니다. 예약한 펜션에 도착한 후 주인에게 묻죠.

"근처에 관광을 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알려주세요."

주인이 의아해하며 타에코를 바라봅니다.

"이곳 주변에는 관광할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데요?"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관광을 할만한 곳조차 없다니 조금 황당하네요. 폰이 안 터지는 곳으로 갔으니 주변 검색도 못해볼 것이고.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왜 그런 곳에 펜션이 있죠? 왜 그런 곳에서 예약을 받을까요.

타에코도 이런 곳에 펜션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죠. 황당한 하루가 그렇게 저물고 잠이 듭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데요. 아래쪽에 한 아주머니가 앉아서는 눈을 맞춥니다. 아침입니다,라고 하면서 강요는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체조를 할 수 있어요, 하고는 나가죠.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눈 뜨자마자 누가 방에 들어와 있다니요? 이건 조금 무례한 행동 같은데요. 아니면 무서운 건가? 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적응이 되지 않는 타에코는 펜션의 주변에 모래사장과 바다뿐이라는 것을 한탄하며, 짐을 싸서 나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도하는데요. 폰이 터지지 않으니 지도 검색도 안 되고, 잔뜩 싸온 무거운 짐과 함께 그만 풀 숲에서 길을 잃게 되죠.



바쁜 일상을 떠나서 모처럼의 휴가를 떠났을 텐데, 길도 잃어버리고. 이건 뭐 진정한 쉼이 아니라 고난 길인데요? 모처럼의 휴가를 이렇게 허비하다니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타에코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저 멀리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조금씩 커집니다.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는 중이죠. 바로 아침에 방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인데요. 말없이 타에코 앞에 멈추더니 지그시 타에코를 바라보기만 하죠. 지친 타에코 눈에는 아주머니가 탄 자전거의 뒷좌석이 클로즈업되어 보입니다. 자전거의 뒷자리 하나가 비어있죠. 그러나 타에코는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과 캐리어 둘 중 하나는 자전거 뒷자리를 포기해야 하죠. 결국 타에코는 자신의 많은 것이 들어있는 무거운 짐 가방을, 위치도 모르는 그 들판에 버리고 자전거 뒷자리에 앉습니다.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여행 갈 때는 왠지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할 거 같아서 다 챙기게 되잖습니까. 특히 여성분들은 좀 더 그런 경향이 있죠. 그런데 자신의 손때 묻은 짐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버린다. 이거 뭔가 메시지를 주는 거네요.

진정한 쉼을 위한 가장 첫 번째 실천을 알려줍니다. 먼저 짐을 버리고 가벼워지는 것이 휴식의 첫 순서라는 거죠.



의미 있네요. 내려놓고 가벼워지기. 말은 쉽지만 누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행동이죠. 멋진 장면입니다. 슬슬 주인공의 여행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대되네요.   

돌아온 타에코는 이 펜션의 일과가 지극히 단순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 끼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을 제외하면 아침에 바닷가에서 몇몇 사람들과 체조하는 것, 낮에는 사람들과 바닷가 벤치에서 맥주를 들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팥빙수를 사 먹을 수 있는데 살 때는 돈이 아닌, 자신이 가진 물건 중 어떤 물건이든 주면 돼요. 어떤 아이는 색종이 접은 것으로 팥빙수를 사 먹어요.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일단 그곳에 온 사람들은 더 이상 돈도 필요 없는 거네요? 세상적인 것들에서 다 벗어날 수 있는 곳이네요. 듣지 못하던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들리겠군요.

너무 조용하니까요. 파도소리, 팥빙수 얼음 가는 소리,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 같은 평소에 전혀 무관심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특이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보통 우리가 길을 알려줄 때, 예를 들면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세요, 라든지, 이대로 우편에 병원을 지나, 약국을 지나, 빵집이 나오거든, 빵집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왼쪽 노란색 대문 집이 영희네 집이에요, 처럼 정확히 찾아갈 수 있도록, 이왕이면 명확한 명칭을 사용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계속 가시다가 왠지 좀 불안해지는 시점에 오른쪽으로 가세요."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주인공은 걷다가 자신이 어느 시점부터 불안해지는지 감정을 체크하게 됩니다. 격한 일이 있을 때에만 내 감정을 추스르는 현대인에게, 평소에도 당신의 감정은 미세한 부분까지 살아있는 것 맞습니까? 고맙게 물어봐 주는 장면이었죠. 사색을 하면 된다는 이곳 사람의 이야기에, 주인공은 묻고 또 묻습니다. 사색을 하는 방법이라도 있나요? 사색이 이곳 풍습인가요? 그 대사가 스크린 밖으로 나오는 시점만 해도 그것이 그토록 슬픈 대사인 줄 미처 몰랐어요.

영화 <안경> _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는 또 질문했죠.

당신의 감정은 아침과 정오, 오후와 저녁, 깊은 밤 모두 일정하였나요? 혹시 어떤 것에 들뜨고 무슨 말에 부풀며 어떻게 꿈틀대었고 왜 조여들었는지는 체크했나요? 오늘 한숨은 몇 번 쉬었는지, 언제 기지개를 켜듯 마음이 개운했는지, 답답해서 허공을 멍하니 쳐다본 순간은 몇 번이나 되었는지 기억할 순 있나요? 자신을 내팽개치고, 조금씩 굳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있나요? 당신은 원래 바람 한 점만 불어도 솜털처럼 반응했었던 걸요.

휴식이라는 단어에 속고 있지는 않나요? 그 속에 진짜 자유가 있나요?

라고 말이에요.



정정하고 싶네요. 아까 '여행'하면 떠오르는 낭만적인 단어 말입니다.

타에코의 여정을 함께 하니 이제는 '나침반, 지도' 같은 것이 떠오르네요.

요즘은 지도를 펼칠 일도 웬만해선 없죠. 즉각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생각이라는 것도 할 필요가 별로 없죠. 인터넷 검색이 더 빠르니까.

신속한 처리가 가능한 시대이니, 사람들은 '빨리를 원하겠죠.

동일한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해내면 능력자로 인정받는 시대이기도 하죠.

영화가 우리를 향해 묻는 건 이런 것이겠죠.

"과연 나라는 사람은 '능력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맞는 거야?"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팥빙수 하나 먹는 것이 전부인 그런 휴식.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단 하루 만이라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을 다독여주는 영화 <안경>이었습니다.


author Su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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