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단 한마디로 함축한다면, 바로 <전국 노래자랑>이라 해도 될 만큼 수많은 인생들이 누적되어 더 빛을 발하는 타이틀이죠. 전국노래자랑.
가끔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진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만나고픈 날.
있죠.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가끔은 '진짜'에 허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보신다면 분명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예요. 등장인물이 예상외로 아주 많으나 결국은 한 남성의 이야기가 큰 줄기예요. 이 남자는 노래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그래서 가수가 되고 싶었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하겠군요. 많은 가수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전국노래자랑이라는 디딤돌을 디디고 올랐을 텐데. 어떻게 보면 수많은 인생 중에서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인생들이 모인 곳이라고 범위가 좁혀지네요.
그곳에 또 한 분의 꿈꾸는 사람이 있었죠. 바로 이경규 선생님입니다. 각본을 맡고 투자도 하시면서 제작에 일조하셨는데요, 어느 방송에서 이경규 선생님께 질문했죠. 코미디언으로 만족해도 되는데 왜 영화 제작을 하시는가. 그러자 이경규 선생님은 그러셨다죠. '영화는 나의 꿈이다. 사람에게 꿈이 없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겠는가.'
이경규 선생님 _ 이미지: 네이버
맞는 말씀입니다. 결국 꿈을 이룬 분이 되시기도 했네요. <복수혈전>이나 <복면달호> 같은 영화도 제작한 것으로 아는데, 크게 흥행은 못했어도 꿈을 향해 계속 나가는 모습은 배워야 할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꿈은 이루기보다가지고만 있어도, 언젠간 도전하겠다는 희망이 되어 주잖아요. 그러한 꿈 자체만으로도 멋지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는지 <전국노래자랑>에서도 꿈을 이루기보다는 꿈을 향한 도전에 초점을 맞춰요. '숨 쉬는 것만큼 노래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주인공 박봉남 역할은 김인권 씨가 맡았어요. 봉남이는 가수가 되고픈 가수 병에 걸려서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부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노래만 부르고 다니죠.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노래라는 꿈과 부인이라는 현실 사이를 오가는 조금은 요즘 시대 간이 큰 캐릭터인데요?
사실 부인인 미애는, 철없던 시절에 봉남이 오빠가 불러주는 노래에 반해서 시집을 갔거든요. 친정 엄마의 충고도 무시하고 '봉남 오빠 노래를 들을 수만 있다면 평생 행복할 거야.' 하며 시집을 갔기 때문에, 봉남이에게 크게 반박도 못 하고 친정 엄마께 하소연도못하며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고 애쓰죠. 미용기술 배워서작은 미용실을 세 얻어 생계를 이어가는 중인데,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이제는 서서히 지쳐가는 중입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노래만 불러주면 돼! 하던 환상이, 현실에서도 깨지지 않고 이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봉남이가 무척 야속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현실은 현실이죠.
결국 미애도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은 돈이라는 것을 깨닫죠. 남편 봉남에게 미용자격증을 따서 보조라도 해달라고 합니다. 어려운 형편인 것은 잘 아니까봉남이도 순순히 미용자격증을 따기로 응해요.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약속이라는 게 불안하죠. 이어서 그 약속을 어기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까? 심지어순순히 약속한다니, 후에 닥칠 폭풍이 벌써 두려운데요.
그렇죠. 어느 날 봉남이가 사는 시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봉남이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죠. 미애에게는 일단 아프다는 거짓말을 하고 예선전에 참가해요. 그리고 당당히 합격하죠. 봉남이는 예전부터 툭하면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친구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공짜로 자장면을 먹곤 했었는데요, 그런 봉남이의 레슨 덕분인지 예선전에는 배달부도 출전해요. 이 영화에는 봉남이 외에도 여러 가정들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동네 사람뿐 아니라 시장까지 노래를 부르러 나오고, 아는 사람이 온통 몰려와서 웃고 손뼉 치는 모습을 보게 돼요.
영화 <전국노래자랑>_이미지 출처: 네이버
그 장면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겠네요. 잠시라도 현실을 내려놓고노래를 부르려는 사람과, 지인들 노래 듣겠다고 앉아있는 사람들의 그런 여유를 감동으로 받아야 할 시대를 살다 보니,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한 무대를 가운데 두고 모인다는 설정이 참 정감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그 느낌을 꼭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꿈을 향해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면서도, 그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진정 특별한 사람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임을 또 한 번 알려주어서, 더 힘을 얻게 하는 작품이랄까요. 도전의 발판을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서민적 무대를 이용했다는 것도 훈훈하지만 사실은 모든 에피소드가 실화 모음이라죠. 덕분에 더욱 살아있는 정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실화라니 의외네요. 참여 가정들의 실화로 하나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마치 다큐처럼 사람 냄새 제대로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봉남이는 예선에 당당히 합격했듯이 미용 시험도 한 번에 척 붙어야 할 텐데요? 시험 어찌되나요? 저는 오직 미애와의 약속이 불안불안하거든요.
당연히 문제가 생깁니다. 노래자랑 본선 날짜가 미용 시험 날짜와 딱 겹쳤거든요. 봉남이가 예선에 참가했던 것도 감쪽같이 모르는 미애는 우연히 시장을 갔다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죠. '미애 씨, 봉남이 말야, 무대에서 날아다녔다?', '그래. 당당하게 합격했지 뭐야.', '미애 씨, 대상 받으면 한턱 쏴야 해.' 같은 이야기였어요. 동네 사람들 전부 다 아는 사실을 자신만 여태까지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죠.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결국 두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났네요. 배신감이 엄청났을 텐데요?예선전에 합격했더라도 결국 위기 순간입니다. 부인 입장에서는 배신감 때문에라도 시험 날짜에 눈을 부릅뜨고 지킬 것 같아요.
미애는 귀가하는 봉남이에게 싸 두었던 가방을 던지곤 집을 나가라고 하죠. 다음날 노래자랑 본부 측에 전화를 합니다. 본선 때가 자신의 출산일이기 때문에 부득이 남편이 출전을 하지 못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하죠. 그러자 본부에서는 출전자인 당사자 봉남이에게 확인 전화를 하게 되는데요, "부인께서 출산이라 본선 진출을 못 하신다면서요?"
봉남이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대답하죠.
"예, 아, 그런데 아내가 지금 막 출산을 해버렸네요. 그러니 문제없이 출전 가능합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두 사람 다 대단합니다. 현실을 위해 시험일정을 지키느냐, 결국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꿈의 기회를 잡느냐, 갈등 한 번 없이 봉남이는 바로 약속 깨는 것을 선택한 거군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봉남이가 상을 받거든요. 미애는 결국 무대 위에 서버린 봉남이를 확인하곤 힘든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됐겠죠. 서운한 마음에 무대를 더이상 봐 주지 않고 돌아서요. 그때 봉남이가 무대에서 이야기합니다.
"우리 부인 미애가 좋아하는 노래.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 부르겠습니다."
너무 밉지만 돌아서던 미애의 발걸음은 그 말로 인해 멈춰요. 사랑이죠. 봉남이는 상 중에서도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그 시간 다른 장소 어느 식당에서 벌어지는 일이 재밌죠. 가수 부활의 멤버 김태원 씨가 TV로 노래자랑을 시청하던 중 마침 '부활'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봉남이를 본 거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일행에게 이야기합니다.
"쟤 좀 데려와 봐."
그렇게 봉남이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낯익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송해 선생님까지 등장하면서 살아있는 훈훈함이 에피소드 안에 꾹꾹 눌러 담긴 작품이니, 사람이 그리운 날에 그리움 채워줄 묘약으로 사용하시면 꽤 효과 있을 걸요.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손녀 이야기가예기치 않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소소한 서민들의 모습에 웃다가 괜스레 눈물이 나는 영화. 음, 보듬어 줘서, 따뜻해서 눈물 나는 영화랄까요. 오랜만에 진짜인 사람들을 만나니, 인지하지 못했던 하루하루의 치열함에 눈이 떠졌달까요. 인생이 노래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마음을 얻어오실 겁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 _ 이미지: 네이버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그리워질 때, 꺼내 먹을 묘약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의 꿈을 따라 부를 수 있고, 그 꿈을 향해 박수쳐주는 사람들의 여유를 만나게 되는 작품.
그 넉넉함을 조금이나마 얻어숨을 쉴 수 있게 될까요.
수많은 인생이 모여, 결국은 인생을 한 곡의 노래로 외치는 무대.각박함 속에서도 아직은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마음에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그 희망에 벌써 안도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