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다는 질문이 중요한 것, 그게 디자인 스피릿!
혼자서 인테리어 공부를 할 때 새로운 3D 모델링 툴을 배우는 건 차라리 쉽다. 말 그대로 도구를 쓰는 법이니까... 조금 더 신경 쓴다면 효율적으로 작업 시간을 줄이는 것 까지도 할 수 있다. 혼자서 연습하기 어려웠던 건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콘셉트'를 정하고 그것에 맞춰 디자인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도대체 무드 보드가 뭐고 왜 만들며 뭘 담아야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책을 읽고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좋다는 공간은 무조건 찾아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다행히 영감을 스토리로, 스토리를 콘셉트로 만드는 과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생전 안 나던 새치가 날 정도로 '콘셉트'이라는 정체 모를 개념에 시달리다가 "A Proposal for a Formal Definition of the Design Concept"(Paul Ralph, Yair Wand 2009)라는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디자인을 정의하자는 내용의 논문이라 '콘셉트'이라 불리는 개념에 대해서만 논하는 글은 아니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글을 분류하고 각 글들이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답이 없는 것을 왜 정의하려 하는가? 에 대한 답변 또한 좋았습니다. 디자인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시도를 꾸준히 해야만 효과적으로 디자인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첫째 답입니다. 정의하는 행위를 통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곳에서는 과정과 결과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둘째 답. 마지막으로 디자인 툴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정보를 정리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위 논문에서 디자인에 대한 글들을 분석한 결과, 크게 네 가지 질문에 대해서 서로 다른 답을 내린 채로 생각을 전개한다고 합니다. MBTI 검사를 하듯 나는 네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생각하며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1. 무엇을 디자인한다는 거야?
- 체계 System
- 인공적인 창작물 Artifact
- 과정 Process
디자인의 대상을 논의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부터 나뉜다고 합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디자인의 대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많이 달라지겠죠.
2. 디자인의 시작과 끝
학계에서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 보다는 실무에서 능력에 따라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뢰를 받아 디자인을 할 때 의뢰인과 충분히, 솔직하게 의견을 나눠야 하는 부분입니다. 회사의 방침상 특정 단계 이상의 작업에는 개입하지 않을 수 있고, 주어진 시간이나 예산에서 작업 가능한 범위가 한정적일 수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 후에 계약서에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뢰인이 서비스를 기대하는 분위기라면 더 X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작업물을 잘 양도하는 그런 아름다운 끝을 위한다면요!
3. 디자인은 신체적 행동인가 정신적 과정인가?
생각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디자인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손으로 그리고 만지고 움직이며 디자인을 개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체적 행동과 정신적 훈련 두 가지를 모두 연마하는 중입니다. 논리를 탄탄하게 짜고 생각을 깨는 훈련을 읽기와 쓰기를 통해 합니다. 손으로 그리는 건 새로운 툴을 배우는 것에 자주 밀리는데... 아침 루틴에 추가해야겠어요. 그리고 제 글에 언제나 등장하는 운동 운동 운동! 덕분에 뇌와 몸을 더 촘촘하게 연결해 몸을 키울수록 뇌도 강해지는 선순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 디자인의 '결과물'은 과연 무엇인가?
- 계획 Plan
- 제품 Artifact
- 해결책 Solution
셋을 구분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실내건축만 놓고 보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이유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안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공간을 이용하는 계획이 바뀌는 것을 말하고 바뀐 계획과 해결책은 공간을 이루는 벽, 바닥, 천장, 빈 공간 등의 제품의 형태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이건 공간에 특수한 경우인 것 같고, 손에 잡히는 형태를 띠지 않는 디자인 결과물을 포함하지 않으니 '디자인'이라는 큰 담론을 논할 땐 셋을 구분해 연구를 세분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어요.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을 하다 보니 이런 논문도 눈에 들어옵니다. 특정 논문을 인용함으로써 논문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은 방식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너무도 적어요. 논문으로 잘 정리된 내용들을 좀 더 쉽고 편하게 이야기 나눌 환경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