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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fa Feb 05. 2022

정체성..? 쉽게 접근하기

정체성..? 기죽지 않고 개념 쪼개기

브런치 작가 활동 계획서에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이라는 너무도 거창한 표현을 쓰곤 심하게 위축됐다. 정체성에 대해 쓰려면 철학 공부부터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난 당장 디자이너로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바쁜데…! 그래서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Who are you, as a designer?

외국계 회사 이직 면접 때 받은 쉬운 단어뿐인 문장인데, 답을 깔끔하게 하지 못했다. 워킹맘이 아닌, 몇 연차+직업으로 표현하는 게 아닌 ‘디자이너’로서의 나…? 디자이너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논의도 변화무쌍하게 진행되는 시대에 정체성이란 거대한 개념까지 섞이니 제대로 한 대 얻어맞았고, 그 질문은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다. 대신 좀 더 가볍고, 쉽게.



내가 좋아하는 것 모으기

디자이너의 정체성이라고 했을 때 '취향'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방향,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할 테니까. 그래서 좋아 보이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핀터레스트엔 보드만 서른 개가 넘고, 인스타는 계정을 목적별로 세 개로 만들어 그에 맞는 계정을 팔로하고 이미지를 저장한다. 이미지가 아닌 다른 콘텐츠는 노션에 모은다. 강점이 “수집”이라 그런지 수집을 참 많이 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해석한 내용을 sns에 올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헤비업로더가 됐다.


ENFJ 크리에이터인 이은재 PD가 본인이 나온 영상만 다시 본다는 말을 했을 때 크게 공감했다. 난 쉬는 시간에 내가 썼던 글, 올린 사진만 찾아본다. 그럴 때 내가 좋아하는 것, 표현하는 것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걸 발견한다. 동시에 취향을 드러내다 보니 주변에서도 나를 오랜 시간 지켜본 친구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할지 쉽게 짐작하고 그 짐작은 높은 확률로 적중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모으고 드러내다 보면 내 취향을 알게 되고 정체성이 좀 더 뚜렷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쥐가 먹을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땅굴에 모아둔 씨앗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나의 '좋아요' 아카이브에서 정체성의 나무가 자라나길.



‘판단’에 ‘근거’ 붙이는 습관 들이기

yunfa 씨는 본인의 디자인을 설명하다가 막히면
'잘 모르겠다'라고 하는 버릇이 있는데,

생각을 왜 그렇게 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야 도움 되는 정보를 줄 수 있어.

지난 학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교수님께 들은 가장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되었던 피드백이다. 내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이렇게 그린 이유가 '그냥'일 때 뒷심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다른 누가 시켜서도 아닌, '내가' 주제를 정하고 결과물을 내는 작업인데 A를 A처럼 표현한 이유를 내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그 후로 의식적으로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체어로 "사실 '그냥' 했는데, 더 생각해보겠다"를 정하니 피드백이 훨씬 풍성해졌다. 비슷한 접근법을 이용한 다른 디자이너나 작가를 소개받거나, 디자인을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을 안내받았다. 



나만의 시각, 해석이 자라는 중!

취향 발견을 위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혹은 '이상한 것'을 수집할 때 내 반응이나 판단에 대한 근거를 붙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보이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생각한 것을 글로 남기니 더 자세히, 그리고 집중해서 경험하게 됐다. 이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답사 사진과 글을 업로드하는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을 운영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동료들과 전시를 보러 갔다. 동료들과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라는 무언가가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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