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처음이라
“애들도 금방 적응해요.
그리고 참 신기하게,
자기 담임이 누군지 아주 기가 막히게 알아요.”
동료교사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 묵직한 진실이 있었다.
나는 학부모 앞에서는 늘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서류상 담임만 나뉜 거지, 아이들은 모두 함께 돌봅니다.”
하지만 그 말 한 구석에는
스스로도 감추지 못하는 솔직함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반 아이들’에게 시선이 더 오래 머물곤 했다.
작은 기척 하나, 숨소리 하나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건
교사의 마음이 아니라
어쩌면 돌보고 싶은 본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미묘한 다름을
어른보다 먼저 느낄 때가 있다.
엄마를 향해 기어가는 아기처럼
자기가 머물 수 있는 품이 어딘지를
감각적으로 파악한다.
포근한 1·2반 친구들은
그렇게 내 곁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모여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내 옆에 앉고,
작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내 손을 찾았다.
그 조용하고 당연한 선택이
나를 조금 더 ‘교사’라는 존재로 완성해 갔다.
영아반은 교육보다 ‘보육’이 중심에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보다
그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버티도록 돕는 일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원감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네는 금방 사고가 나요.
보고 있어도, 정말 한순간이에요.”
처음엔 그 말의 깊이를 몰랐다.
사고란 큰 사건을 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아들은
낮은 목소리로도, 작은 움직임으로도
충분히 큰 사건을 만들 수 있었다.
말로 양보를 요청할 수 없는 아이들.
장난감을 빼앗기면 눈물보다 먼저 이가 나가는 아이들.
서로의 세계가 충돌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원초적이고 순식간이었다.
가볍게 스친 손톱에
살갗이 붉게 부어오르고,
입을 대기만 했는데도
또렷한 자국이 남는다.
아기들의 살결은
숨만 스쳐도 흔적이 남는 바람결 같았다.
나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수없이 “죄송합니다”를 말해야 했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맡긴 어른으로서
그 말은 늘 내 입을 통해 나갔다.
때로는 그 사소한 상처 하나가
내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조금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후회와 다짐이 겹겹이 쌓이는 날들이었다.
초보교사였던 나는
아이들 앞에서 늘 작은 사람으로 서 있었다.
아는 것도 적고, 경험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불안한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내 불안한 손을 보고 울지 않았다.
내 서툰 말투를 듣고 실망하지도 않았다.
말 대신
나의 무릎, 허벅지, 손등을 툭툭 두드리며
자기 마음을 전했다.
그 속삭임 같던 작은 요청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나를 통해 자라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통해 자라고 있었다.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교사는 아이를 통해 배움을 얻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작은 손 하나가 나를 흔들고,
짧은 시선 하나가 마음을 적시며,
사소한 울음 하나가
또 다른 나를 깨우기도 한다.
그날 껌딱지였던 아이가
내 허벅지를 조용히 두드리던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 작은 손끝이
매일 나를 교사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