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하루

원아 명단에서 한 아이의 이름을 지웠을 때

by ItMiRi

시작은 늘 비슷했다.

전에 다니던 곳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약 2주 정도 먼저 출근하게 된 것부터 그랬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내가 먼저 제안을 해서 조기 출근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만 0세 반 원아 중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 학기보다 조금 일찍 등원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잠시 내가 담임을 맡아야 했다.

그래서 나 역시 학기 시작 전에 먼저 출근하게 되었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바뀌었다는 점도 비슷했다.

이곳 역시 원장님이 교체되면서

기존에 있던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그만두었고,

충원해야 할 교사가 많은 상황이었다.

구인 공고를 늦게 낸 탓에

그 틈에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건물의 규모도,

원아 수와 교사 수 역시

이전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2년 정도 담임을 맡아봤던 터라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만 1세,

흔히 말하는 세 살 반 담임이 되었다.

눈이 아주 크고

웃는 모습이 유난히 예쁜 선생님과

투담임을 맡게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이 어린이집은 오리엔테이션을 반별로 진행했다.


오티가 시작되기 전

교사와 학부모가 간단히 눈인사를 나눈 뒤,

유희실에서 예비 만 1세 반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때,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만 1세 아이들은 아직

‘함께’, ‘배려’ 같은 개념을 모른다.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기다.


그런데 그 아이는

유독 겁이 없었고,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셌다.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놀던 것을

망설임 없이 빼앗아 버리곤 했다.


당황한 아이의 엄마가

“친구들 거 빼앗으면 안 돼”라고 말하자,

그 아이는 갑자기

유희실 끝에서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더니

그대로 벽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오, 제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아주 짧은 순간,

단면적으로 본모습이었지만

만약 저 아이의 담임이 내가 된다면

앞으로의 1년이

꽤 고단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주변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머리를 박은 아이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끌벅적하던 유희실이

그 순간,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바로 그때

원장님이 오리엔테이션의 시작을 알렸고,

학부모들 앞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몇몇 학부모들이 원장님께 물었다고 했다.

“저 선생님은 처음 교사를 하는 건가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아가씨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해 줄 수 있을까요?”


원아 명단을 다시 확인했을 때,

그 아이의 이름은 우리 반에 없었다.


그 순간

마음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다행이다.’

너무 솔직한 생각이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1년 앞에서

나는 이미 조금 지쳐 있었으니까.


나는 다시 교실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작은 메모들.


오티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은 없는지,

낮잠은 어떻게 자는 편인지,

낯가림은 심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하고,

짧게 웃으며 답을 듣는

그 평범한 과정이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 이런 게 시작이지.’


오티가 마무리되어 가던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교실 안의 소음이

조금 느슨해질 즈음

누군가 내 앞에 섰다.

고개를 들자

아까 유희실에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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