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과 기다림 사이에서 함께 적응하던 시간
“저기요.”
짧은 호칭 뒤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우리 아이 담임이 선생님인 줄 알고 있었는데요.
그게 아닌가요?”
아까까지 느꼈던 가벼움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까지 적어 내려가던 메모들보다
훨씬 빠르게 생각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다시 명단을 확인했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한 줄 한 줄 천천히 훑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명단에는… 없는 걸로 되어 있어요.”
사실 그대로만 말했다.
목소리도, 표정도 괜히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그 한마디에 대화의 방향이 어긋났다.
나는 반 편성과 담임 배정은 원에서 정해진다는 설명을 하려 했고,
혹시 변경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요. 저는 분명히 들었어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의 공기는 이상하게 단단해졌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확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물러서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동안 그 어머니가 상담을 하러 온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나와 얼굴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오티 이전까지 나를 봤을 리도 없었다.
원장님이 원아 명단을 넘겨준 것도 오티 바로 전날이었고,
그때 이미 반 편성은 모두 정리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 어머니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서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지.’
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혹시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선생님과 혼동했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먼저 설득해 보았다.
그래서 더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다른 선생님이랑 헷갈리신 건 아닐까요?”
그 질문에도 어머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에요. 분명히 선생님이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이야기를 확인받는 일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 확신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것도.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제가 확인해 보고 올게요.”
원장실에 가서 상황을 보고 드린 뒤,
잠시 후 원장님이 직접 내려와 어머니께 설명을 해주셨다.
“서류상 이름만 그렇게 되어 있는 거지,
실제로는 똑같은 담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정리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담임이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아이의 담임이 되었다.
만 1세라는 나이 때문인지,
우리 반은 유난히 ‘적응 기간’이 필요한 아이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와
낯선 공간과 사람을 마주하는 아이들.
울음도, 떨림도, 망설임도
모두 처음인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적응 기간을 갖기로 했다.
처음에는 어머님들과 함께 교실에 머물렀다.
아이가 공간에 익숙해지도록,
이곳이 낯선 곳만은 아니라는 걸
천천히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어머님들이 잠깐씩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
교실 앞에서 짧게 헤어져 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아이가 혼자 교실로 들어가 보게 하기도 했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하루하루 조금씩 늘려가며
분리 과정을 연습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울면
어머님들은 다시 들어와 아이를 데리고 하원을 했다.
덕분에 어머님들은
집에도 가지 못한 채 늘 대기해야 했다.
선생님의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올 준비를 하고서.
기다림이 길어지자
지친 기색도 보였다.
결국 우리 반 어머님들은
다 함께 어린이집 근처 카페에 모여
기다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동갑내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라 그런지
어머님들의 나이도 비슷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불안을 겪고,
같은 울음을 견디고,
같은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 카페는 어느새
단순한 ‘대기 장소’가 아니라,
서로의 한숨을 알아듣고
마음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되어갔다.
그렇게 어머님들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가까워졌다.
돌이켜보면
그 일주일은 아이들만의 적응 기간이 아니었다.
엄마와 떨어지는 법을 배우던 아이들처럼,
나 역시 이 반의 담임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울음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 법을,
엄마들의 불안을
판단하지 않는 법을,
그리고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배웠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일주일이 끝나고서야 깨달았다.
‘담임’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나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마음이 덜 춥도록
곁을 지켜주는 사람,
함께 익숙해져 가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