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옷을 갈아입혀 달라는 말
눈이 큰 나의 짝꿍은 동안이다.
처음엔 아이 엄마라고 해도
많이 커 봐야 초등학생쯤 둔 엄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성인과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였다.
그는 아이들을 대할 때
‘니 아이, 내 아이’를 나누지 않았다.
조금 모난 아이에게도 마음이 먼저 가는 사람.
그래서 나는 그를 믿고 교실을 함께 맡긴다.
그런 그에게도
가끔은 버거운 아이가 있다.
새하얗고 예쁜 얼굴,
그리고 그만큼이나 새초롬한 성격의 여자아이.
아이도 까칠했지만
엄마도 만만치 않았다.
환절기였다.
일교차가 커서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기 쉬운 날.
어느 날,
그 아이 가방 속에서 옷이 세 벌이나 나왔다.
여벌옷인가 했지만
이미 어린이집에 충분히 있었다.
둘이 한참을 고민하다
짝꿍이 말했다.
“내가 전화해 볼게.”
통화는 길어졌다.
길어질수록 그의 얼굴이 굳어갔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옷을 갈아입혀 달래.”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루 세 번.
교실에는 그 아이 말고도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다.
그 짧은 몇 분 동안
다른 아이들은 누가 보지.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그렇게는 어렵습니다.”
그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마음을 몇 번이나 고쳐 먹었을까.
누군가의 걱정을 거절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수화기 너머의 말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유난히 약해요.”
“감기 걸리면 안 돼요.”
“그 정도는 해 주셔야죠.”
부탁이 아니라 요구.
상의가 아니라 지시.
그리고—
한참 어린 학부모의 말투.
그는 아이를 키워 본 시간도,
아이들을 돌본 시간도
누구보다 길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 모든 시간이 지워진 채
“해 주셔야죠”라는 말만 또렷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가 낮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무시받을 일인가 싶더라.”
그 말은 크지 않았지만
마음이 상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전문성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이 먼저였을까.
경력보다 나이가 적어 보였던 걸까.
그 순간만큼은
선생님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서운했을 것이다.
그리고 옷 세 벌은 시작이었다.
다음은 밥이었다.
집에서는 아직도
밥 대신 우유를 찾는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는
어떻게든 밥을 꼭 먹여 달라고.
하지만 아이는
한 번 입에 넣으면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뱉지도, 삼키지도 않은 채
말없이 버티는 시간.
그건 떼라기보다
작고 단단한 시위 같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는 밥과 싸우는 게 아니라
세상과 협상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는
불안으로 아이를 감싸는 방법밖에
몰랐던 건 아닐까.
짝꿍은 오늘도
교실 한가운데 서서
한 아이의 기준과
모두의 현실 사이를 오간다.
가끔은 마음이 상하고,
가끔은 자존심이 스친다.
그래도 그는
아이들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교실은
한 사람의 불안이 아니라
여럿의 시간을 품어야 하는 곳이니까.
기준을 세우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거절로 보이지만,
어쩌면
모두를 지키는 가장 조용한 용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