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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May 12. 2023

사과 고르기

어릴 적에 나는 사과가 명물인 고장에서 자랐다.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때, 가을이면 수확한 사과 중에 좋은 사과는 농협으로 보내고 거기서 탈락된 사과를 과수원 하는 친구들이 가져와서 네 것 내 것 없이 나누어 먹었다.


당시에는 홍옥이란 사과가 대세였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각 사과마다 차이가 제법 있었다. 어떤 것은 너무 시고 어떤 것은 새콤 달콤 적당하였다.  그 새콤 달콤을 찾고자 '아이 시어'를 연발하면서 먹었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초록색의 두꺼운 껍질의 인도 델리셔스(?)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다 홍옥보다 덜 시면서 단맛이 더 나는  사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수원 친구에게 물으니 부사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홍옥파 vs. 부사파의 논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 토론은 심각해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시장에 내기에는 어려운 사과들만 먹었으니.  홍옥이든 부사든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으니.


공부하느라 점점 큰 도시로 옮겨오면서 가을날의 사과 만찬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내 과일의 선호도 먹기에 편리한 귤로 갈아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들어 사과를 보니 부사가 천하통일 하였다.  그 부사는 예전에 먹던 부사가 아니었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뛰어났고 육질도 단단해졌다.


90년대 미국에서 한 10년 정도 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과의 품종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부사와 다른 한 종의 빨간색의 사과가 대세였는데  나는 부사만 사 먹었다.  이 미국 사과가 참 그랬다. 홍옥과 같은 면이 있었다.  어떤 것은 정말 맛있는데 어떤 것은 푸석푸석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사과의 종류가 예전보다는 많이 다양해졌다.  한 10종류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부사만 샀다. 미국사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Gala(갈라), Honeycrisp (허니크리스프), Granny Smith ( 초록색, 그래니 스미쓰), Pink Lady(핑크레이디), Envy (엔비:볼록하게 올라온 것)


어느 날  아들에게 사과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자기는 어떤 사과를 살 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하더니  Reddit (한국의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사과의 맛에 대하여 토론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새콤달콤한 맛 베스트 3을 찾아서 사 왔다.


 Pink lady(핑크 레이디),  Cosmic Crisp(코스믹 크리스프), Honey Crisp(허니 크리스프)


Snapdragon (스냅드래곤), Red Deilicious (레드 딜리셔스), Cosmic Crisp(코스믹 크리스피), Opal (노란색: 오팔) , Sugarbee (슈가비


진짜 맛있었다.  부사보다는 약간 새콤하면서 단단한 과질이 제법이었다. 각자의 최애를 고르면서 재미있게 사과를 먹었다.


곧이어 노란색인 오팔을 시도해 보았다 . 색상이 왠지 퍼석퍼석할 것 같아서 거부감이 있었었다.  그런데  어머나, 이것은 달콤 새콤으로 맛있었다.  껍질도 얇고 현재 나의 최애 사과이다.


양 옆으로 있는 이 주일의 세일: Honeycrisp와 Fuji (부사)


세월이 흘렀다.  나도 변했고 사과도 변했다^^;  사과의 맛에 대하여만 토론하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사과별로  조그만 차이점 찾아내고자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도 참 재미있는 경험이다.


작은 차이의 인식.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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