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나는 사과가 명물인 고장에서 자랐다.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 때, 가을이면 수확한 사과 중에 좋은 사과는 농협으로 보내고 거기서 탈락된 사과를 과수원 하는 친구들이 가져와서 네 것 내 것 없이 나누어 먹었다.
당시에는 홍옥이란 사과가 대세였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각 사과마다 차이가 제법 있었다.어떤 것은 너무 시고 어떤 것은 새콤 달콤 적당하였다. 그 새콤 달콤을 찾고자 '아이 시어'를 연발하면서 먹었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초록색의 두꺼운 껍질의 인도 델리셔스(?)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다 홍옥보다 덜 시면서 단맛이 더 나는 사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수원 친구에게 물으니 부사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홍옥파 vs. 부사파의 논쟁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 토론은 심각해질 수가 없었다.우리는 시장에 내기에는 어려운 사과들만 먹었으니. 홍옥이든 부사든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으니.
공부하느라 점점 큰 도시로 옮겨오면서 가을날의 사과 만찬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내 과일의 선호도 먹기에 편리한 귤로 갈아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들어 사과를 보니 부사가 천하통일 하였다. 그 부사는 예전에 먹던 부사가 아니었다.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뛰어났고 육질도 단단해졌다.
90년대 미국에서 한 10년 정도 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과의 품종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부사와 다른 한 종의 빨간색의 사과가 대세였는데 나는 부사만 사 먹었다. 이 미국 사과가 참 그랬다. 홍옥과 같은 면이 있었다. 어떤 것은 정말 맛있는데 어떤 것은 푸석푸석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사과의 종류가 예전보다는 많이 다양해졌다. 한 10종류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부사만 샀다. 미국사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Gala(갈라), Honeycrisp (허니크리스프), Granny Smith ( 초록색, 그래니 스미쓰), Pink Lady(핑크레이디), Envy (엔비:볼록하게 올라온 것)
어느 날 아들에게 사과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자기는 어떤 사과를 살 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하더니 Reddit (한국의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사과의 맛에 대하여 토론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새콤달콤한 맛 베스트 3을 찾아서 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