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 Sep 05. 2023

샌프란시스코 (2): 프레시디오 국립공원

Presidio National Park 

프레시디오 국립공원(Presidio National Park)은 샌프란시스코의 역사가 깃든 장소이다 (파란색 원). 여기서 금문교 (Golden Gate Bridge: 초록색원)를 볼 수 있어 금문교 공원이라고도 한다. 앞에서 포스팅한 Fisherman's Warf (빨간색 원)와 같은 해안선상에 있다. 처음엔 지도를 보고 그냥 해변에 있는 공원이겠구나 했는데 입구에 국립공원(National Parkt)이라고 되어 있어 좀 놀랬다. 대도시속에 있는 국립공원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Presidio는 스페인 말로 요새라는 의미이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원래는 멕시코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18세기 중반부터 이 지역은 스페인군인들의 초소로 쓰이다가 19세기 초에 멕시코가 독립을 하면서 멕시코의 전초기치로 사용이 된다. 19세기 중반에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 (Mexican-American War, 1846-1848)에서 이 초소의 주인공은 미군으로 바뀌었다. 그 후로 이곳은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군인들의 훈련 장소로,  공군 기지로 사용된, 미국의 서부해안의 최대규모의 군기지였다.  1960년대부터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로 지정되고 70년도부터  금문교 지역을 국립공원화하는 활동이 시작되고 1990년대에 이 공원은 국립공원 시스템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프레시도에 들어서면 일단 일단 다른 유명한 (요세미티나 엘로우스톤 같은) 국립공원과는 다른 느낌이다.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온듯한 느낌이다. 찻길 옆으로 있는 집들에는 사람들이 다 살고 있다. 부드러운 능선을 하고 있는 나지막한 산에 여기저기 난 트랙킹 트레일등이 선명하게 보인다. 주차장은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예전에 군인들의 숙소로 쓰였던 붉은색의 건물들로 둘러싸이 커다란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잔디밭이 끝난 곳에 바다가 보인다. 유난히 돛단배가 한 줄로 나란히 사열을 하듯 바다 위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잔디밭에는 가족 단위로 피크닉을 와서 파티를 하면서 햇살과 바람과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다. 이곳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시민들의 휴식 장소인 것 같다. 



바닷가로 나와서 골든 브리지 쪽으로 걸어간다. 이 공원을 단순히 금문교를 볼 수 있는 곳으로만 기대하고 가면 오산이다.  금문교를 가까이 볼 수 있는 피어로 가기 위해 0.5마일 걸어가는 와중에 철새의 서식지도 있고, 모래사장이 제법 괜찮은 해수욕장 (beach)도 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비눗방울이 하늘을 떠다니고 있고 그 비눗방울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퍼지고 있다. 




비록 안개가 윗부분을 덮었지만 금문교가 제법 가까이 보이는 곳이 피어가 하나 있다. 이 피어에는 낚시꾼이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다. 한 바퀴 둘러보니 큰 게를 잡은 사람들, 제법 큰 고기(이름 모름)를 잡은 사람들, 아주 작은 고기 하나 잡고도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인다. 그냥 시간을 낚는 거라는 예전의 고사의 내용이 생각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낚시꾼의 정체는 똑같다. 



이 공원에 접해 있는 유명한 곳이 'The Palace of Fine Art'이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는 왜 미술관을 굳이 궁전이라고 하였나? 궁금했다.  가서 보내 왜 궁전( Palace)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마치 그리스-로마 시대에 볼 수 있은 원형건물과 그를 바치고 있는 기둥들은 섬세하게 새겨진 장식들이 참 아름답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호수와의 조화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원형 (Protocol) 실체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사진 찍게 만드는 장소였다. 이곳에 들어선 지 십 초도 안 되어 금문교와 안개는 내 기억에서 벌써 사라졌다. 


이곳은 원래 1915년에 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파나마 -태평약 국제 박람회를 기념하는 구조물/  건축물이었다.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를 잿더미로 만든 큰 지진이 있었다. 이후 이 도시의 지도자들은 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해왔다. 1910년에 파나마 운하의 완공을 축하하는 박람회 개최하기 위해 기부금 모집을 하였는데 2시간 만에 당시 돈으로 4백만 달러를 모금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결국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큰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박람회를 주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는 미술관이 아니다! 이름만 보면 미술관 같더니만. 박람회 이후  이곳은 개인이나 기업의 행사나 전시회를 하고 있다. 결혼식장으로도 가장 선호되는 곳이기도 하다. 때마침 여기서 오후 늦게 있을 결혼식을 준비하는 커플과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The Palace of Fine Art에서의 기억은 상당히 선명하다. 무언가 고전적인 세계로 나를 데려가는 느낌이다. 그 건축물 속에 있는 동안은 나는 현재와 단절된 느낌이다. 소위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의 시간'이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는 서둘러 시간을 건너뛰어서 현대의 삶을 향해 발길을 돌긴다. 아쉽지만, 프레시도와 궁전에서의 시간이 투명한 비눗방울에 햇살의 색상이 입혀진듯한, 아름답게 채색된 추억 한가득 안고 돌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샌프란시스코 (1): Fisherman's Whar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