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 Sep 26. 2023

손가락을 베이고

지금 왼쪽 세 번째 손가락에 일회용 밴드가 붙여져 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위아래 하나 옆으로 하나, 

상처가 꽤 크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서 꿰맬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마음이 영 힘들다. 

같은 실수를 참 여러 차례하고 있다. 


왕장창, 아야야

날카롭게 깨지는 소리,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

 이어지는 아프고 놀라는 소리, 

이 소리가 최근 나흘 연이어 우리 집 부엌에서 났다. 


바닥과 조리대가 석재로 된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끊임없이 유리그릇이 깨져나가고 있다. 

처음에 '나이가 드니까 자꾸 그릇이 미끄러져 나가는구나' 하시던 친정아버지 생각이 나서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이렇게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는 이 참사.

이건 나이 문제가 아니다. 

급한 나의 성격이 문제다. 


지난 30여 년의 세월을 워킹맘으로 살아오다 보니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낭비인 것처럼 살았다. 

일을 하면서 눈은 다음에 할 일로 가있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 하는 일은 얼른 해치워야 할 일이다. 

하는 일을 즐기라는 말은 생전 보지는 못하고 말로만 듣던 성경외경에나 있는 말이다. 

현재 하는 일을 즐기지 못하니, 내가 하는 일들은  나를 피곤하게 하는 숙제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퇴직을 하면서 가장 처음 다짐한 것이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보자'였다.

처음엔 조금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과정을 12진법과 60진법으로 나눈 프레임에 다시 갇히며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고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집안에서도 가로 뛰고 세로 뛰고 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렇게 서두른담. 


그럼에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예전에  아프리카 케냐에 갔을 때 

유일하게 있던 한국 음식점 사장님이 

여기 아프리카 직원들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할 줄 몰라 답답하다고 푸념하셨다. 


반대로, 컨베이 벨트 돌리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산업화의 후손들인 우리에게는  

효율이라는 것은 그냥 우리의 DNA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가 드니 그것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것,

삶은 과정이라는 것을.  

60진법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효율은 결과론적이다. 


이 효율 본능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DNA를 이길 수는 없는 법

다른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다 

유난히 내가 느리게 하는 일을 하나 생각해 낸다.


브런치에 글 쓰는 일! 

매번 글을 쓸 때면 나는 굼떠진다.

쓰다 보면 글이 산으로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딱딱한 나의 글 솜씨에 늘 좌절한다.

그럴 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을 할 때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그 순간에 하는 그 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저 문만 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