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안부

#2. 조용히 함께 있어주는 그들에게 보내는 나의 안부


조용한 안부


당신이 이곳에 온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네요.

내 나이 먹는 줄은 모르고,

당신이 벌써 이리 자랐나 싶었어요.

가늠할 수 없는 내 시간인지라,

그저 당신과 당신들의 시간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내가 보이나요?

내가 들리나요?

나를 느끼나요?


거기 지나쳐가는 당신,

내가 보여요?

내가 들릴까요?

나를 느껴본 적 있을까요?


이것은 조용한 안부.


나는 당신의 발걸음을 느껴요.

늦은 밤 술기운 가득한 발걸음을 알아요.

매일 조금씩 다른

당신의 그 걸음을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의 말소리를 들어요.


누군가와 나누는 애달픈 통화 소리에

나도 몰래 달뜬 마음 식히느라 밤잠 설치기도 했지요.

누가 듣는 줄도 모른 채,

그리 낯간지러운 얘기도 술술 해대던

당신의 말소리를 알아요.


나는 당신이 맞잡은 손을 보았지요.

좋으면서 애써 아닌 척 해보이던 그 표정도,

맞잡은 손의 온기가 식어갈 때의 당신의 표정도,

가만 가만히 보았지요.


당신이 이곳에 온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네요.


우리가. 이곳에. 산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네요.







호주에 다녀온 뒤로, 아니 너와 시간을 보낸 후로, 나는 더 살아있는 것들에 민감해졌다. 많은 것들이 말을 걸어왔고, 그것들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보다 많이 멈췄고, 많이 바라봤다.


스무 해가 넘게 살아온 이 아파트. 몇 백번은 오르고 내렸을, 아니 백 번이 뭐야. 몇 천 번은 오르고 내렸을 우리 아파트 길을 걷다가 문득 조용히 머무르는 그대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고도 치고, 누군가 전화통화로 싸우기도 하고,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잔뜩 술에 취해 게워내기도 했었을 그 길, 그 길에 있는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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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나무들이, 무심한 벤치가, 가로등이 내 이야기를 들었겠지.

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의 나를 봤겠지.

여전히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가만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지.

그런 조용한 안부.


그 안부 잘 받았습니다.



2016.03.28. 두 번째 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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