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 식당을 해볼까?

#160209_마을 브런치 카페, 벨기에 식당

#160209_오늘의 대화


지갑 열기가 겁나는 요즘, 얼마라도 아껴보겠다고 점심은 거의 집에서 샌드위치를 싸오는데 아침부터 정전이라는 거다. 노트북 배터리가 5%라 집에서 작업할 수는 없고, 샌드위치고 뭐고 1시간에 한 대 올까 말까 하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달렸다.


버스를 놓칠 순 없어!


여기는 산동네. 테라스에서 도시 전역이 내려다보이고, 바다도 보이는 그야말로 '오션뷰'. 나무도 많고 새들도 많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산동네는 쉽게 말하면 좀 산다하는 이들이 모여사는 한적한 동네. 한 집에 차 두대쯤은 있어 마을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든 말든 상관없고(막차가 6시 40분), 주말에는 그마저도 5시에 끊기는데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거기엔 어처구니없이 비싼 버스비에 치를 떨면서도 그에 100% 의지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더부살이하고 있다. 지금 머무는 집엔 아우디와 벤츠가 한 대씩 주차되어 있지만 나완 상관없는 얘기. (하루는 막차시간을 깜빡해 3시간 반 동안 걸어 집에 온 적도 있었기에, 우리에게 버스는 그야말로 도심으로 나가는 생명줄이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 샌드위치가 없다! (올레!!!)


퍽퍽한 샌드위치에 질릴 대로 질린 터라, 외식을 한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 건 사실. 햇살도 좋고, 노랑, 핑크, 하늘색 뭔가 밝은 색깔들이 가득 찬 카페로 들어가 (남이 만들어준, 그래도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패션푸룻 주스를 시키고는 우리만의 "우리 뭐하지?"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 뭐하지?"는 현실성이 아주 떨어지는 이야기들을 꿈처럼 늘어놓는 것.


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카페를 하는 거야. 나는 드립커피만 할래.


너: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데 드립만 할거야?


나: 에스프레소 머신만 사는데 최소 200만원은 들 걸?


너: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나: 그럼 나는 드립커피 만드는 재료들만 살테니, 너는 에스프레소 뽑는 기계를 준비하도록!


너: 근데 커피만 파는 거 말고 브런치 카페 하고 싶어.


나: 그러자!


이야기는 산으로 가서 광주에서 벨기에 머슬 전문점을 하는 걸로 얘기가 됐다.


"아직 광주엔 벨기에 음식점이 없으니 메리트가 있어. 내가 음식점 허가받고 벨기에 맥주 거래하고 그러는 거 다 책임질게. 넌 자금만 마련해와. 그렇게 2년만 하자. "


샐러리, 타임, 파슬리. 집에서 먹던 홍합탕과 다른 재료들
어느날 네가 만들었던 벨기에식 홍합요리


겨울철 홍합이 싸다는 걸로 계속 꼬셨다.

"1kg 에 3달러도 안돼! (사실 정확한 가격은 모르나 그냥 대충 얘기함). 벨지움 머슬 스튜, 괜찮잖아!"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화장실까지 이어져 화장실 청결도가 식당의 인상을 좌우한다는 식당철학까지 논하게 되었다. (그런데 네 부엌도 깨끗해야 손님들이 올거야... 제발.)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숨 막혀 죽을 것 같다는 너. 언제나 마음 둘 곳, 오래 머무를 곳을 찾고 싶어 하는 나.


2년이란 소리에 학을 떼는 네게 "우선 2년만 그렇게 해보자. 중간중간 너 여행 가고 싶을 때 여행 가. 그래도 2년만 해보자. (난 사실 3년은 해보고 싶은데 말이야.) "라고 설득하다가 문득.



나 진심이구나, 싶었다.


너랑 같이 치고받고 싸우며 식당하고 싶다.


어디 홍합이 좋은지 남광주시장을 헤집고 다니고 싶다.


맛있는 커피를 내가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


네가 만들어준 홍합요리를 맛나게 먹으며 "역시 네가 만든 음식이 최고야." 엄지 척 해주고 싶다.


그 지겨운 홍합 손질도 내가 할테니, 우리 정말 식당 할까?


그러고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이 마음 뭐지? "우리 뭐하지?" 놀이가 재미없어졌다. 이런 놀이 하고 싶지 않아졌어. 진짜, 진짜를 해보고 싶어. 이놈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국에서 벨기에식 홍합 스튜 1인분에 얼마면 되겠냐고 물어 15불이면 괜찮지 않냐고 했다가 핀잔을 들었다. 도대체 몇 그릇을 팔아야 하냐고, 그럴 바엔 호주에서 파는 게 낫겠다는 그 말에 울어버렸다. 우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깔깔깔 또 웃어버렸다. 너 도대체 왜 우니, 하는 말에 그도 나도 그저 깔깔깔 웃었다.


이건 어차피 그냥 상상인데, 헛소리인데, 무슨 진심을 다해, 사력을 다해 상상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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