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세포와 감성 세포 대충돌! 부린이를 위한 부동산 체크리스트
부동산의 첫 문을 열며
내집마련을 꿈꾼 이래 처음으로 부동산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집 앞의 상가만 해도 부동산이 2곳이나 있는데 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이렇게 묻고 싶었다.
사장님, 서울에 내집마련 가능합니까.
월급쟁이 부자들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a.k.a 월부) 강의를 듣고, 같은 꿈을 가진 분들과 소통하고,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빠짐없이 들으며 막막하기만 했던 서울에 내집마련이란 꿈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내가 가진 돈에 당장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이 작은 한 걸음걸음이 크게만 느껴지는 그 꿈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공부하고 몰두하고 간절하게 열망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돈은 적지만 이런 마음으로, 이런 열망으로 부동산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처음 부동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체크리스트
잠깐, '임장'이란 용어가 생소할 수 있는 부린이를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임장은 현장에 임한다는 의미로, 부동산 거래를 위해 해당 지역/매물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원하는 아파트가 있는 단지 내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부동산을 선정하는 건 일단 처음인 만큼 네이버 부동산에서 인상이 좋아 보이시는 분을 나름대로 택하고자 했다. 그리고 전화 시,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기 위해 약간의 '컨셉'을 정해보았다.
혼자서 시뮬레이션도 해 보았지만, 왠지 모르게 덜덜 떨면서 전화를 걸었다.
RRRRR... RRRRR...
나: 사장님 안녕하세요. 네이버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부: 네네
나: 00 단지랑 00단지 매매 시세가 어느 정도 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부: 00는 제일 큰 평이 21평형이고, 거기가 지금 0억 0천이에요.
얼마 전에 0억 0천으로 나왔던 건 매매가 되어 나갔고요. 실거주로 알아보시나요?
나: 네, 신혼부부고요. 실거주로 하려고 매매로 알아보고 있거든요.
부: 네, 0억 0천이고 방 3개 화장실 하나고요.
나: 00 단지는 조금 더 저렴한 게 맞죠?
부: 00 단지는 지금 우리한테 나온 거는 23평이긴 한데 방이 하나예요. 큰 대신에요.
나: 네, 혹시 그럼 거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많이 있을까요?
부: 우리 신부님, 여기 신혼부부 살기는 좋아요. 좋은데 어린이집도 인근에 있긴 하지만 조금 00쪽은 주거지역이라서 어린이집이 인근에 많이 있어요.
나: 혹시 사장님 토요일에 예약하고 방문하고 싶은데 일정 괜찮으실까요?
신혼부부로 컨셉을 잡자 마치 웨딩 플래너처럼 사장님께서 나를 신부라고 지칭하기 시작하신 ^-^..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생애 첫 '연기'에 묘한 흥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토요일 집을 보기로 하고 예약을 마쳤다.
첫 임장인 만큼 체크리스트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아래 체크리스트는 월부닷컴 '내집마련 기초반' 강의에서 배운 내용에 따라 정리한 것이다.)
30분 정도 전에 미리 도착하는 게 좋다고 하여 정말 일찍 도착했는데, 예상 밖의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바로 부동산 사장님께서 다른 분과 계약을 진행하고 계신 것. 하여 일찍 도착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과 미리 지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사라져 아쉬웠다.
그래도 앉아있는 대신에 지도 앞에 서서 스스로 위치를 한번 확인해보고 주위에 뭐가 있는지 부동산의 지도는 일반 지도랑은 달리 뭐가 표기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은 소용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지도를 열심히 보면서 기다렸다.
오늘 볼 매물은 2개였고, 이동하는 길에 나는 미리 챙겨간 포스트잇에 단지와 가격을 휘갈겨 적었다.
2개 단지 총 2개의 매물을 봤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고 꼼꼼하게, 정말 '산다'는 생각의 마음을 갖고 간절하게 보려 노력했다. 단지에 걸어가면서는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지,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분위기를 보려고 했는데 일단 주말 오전 제가 가본 매물의 환경은 열악하다고 느꼈다.
큰길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1차선이라서 굉장히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자차로의 편의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 또한 1차선인 만큼 사람들의 무단횡단도 굉장히 많았는데 아이가 있다면 되게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조금 슬픈 기분으로 첫 매물을 방문했다.
띵동 ♪
문이 열리고..
세입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만만한 부엌부터 살펴보았다. 물도 틀어보고 뷰도 보고 창문도 열어보고. 2년 차 신축인 터라 내부는 굉장히 깨끗했고 싱크대 쪽에 실리콘이 떨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현재 무상 하자보수 기간이라 수리가 될 예정이라 확인하였다. 그 외에는 발코니와 세탁기 등 쪽에도 곰팡이가 있거나 하는 부분 없이 깨끗했다.
이곳을 둘러보며 사장님과 세입자분께 아래와 같은 질문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 혹시 아래와 위층에 아이들이 사나요? => 안 산다.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
- 반려동물 키워도 괜찮나요? => 마침 그분들도 고양이를 키우고 계셔서 안심할 수 있었다
- 주차는 괜찮나요? => 1대면 괜찮다. 근데 2대면 빠듯할 수 있다. 관리비도 2만 원 더 든다
- 언제 이사하시나요? => 12월 예정이다
- 남향과 남서향 동과의 차이는 얼마인가? => 3천만 원 정도
두 번째 매물은 환경이 더 열악했다.
단지가 깨끗하지 못하고ㅠ 마치 술집 주변의 오전처럼 그런..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여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개인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고 보기에도 그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실제 들어가서 본 결과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세입자가 살고 있지 않은 빈 집이라 조금 편하게 보긴 하였는데, 구축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다 수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팡이가 피거나 실리콘이 벗겨지거나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고 쾌적하지 않았다.
정말로 임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와보지 않고는 확실히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매물을 다 보고 부동산에 다시 갔다. 왠지 사장님께서는 이만 헤어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는데, 다시 갔다. 그리고 내부가 괜찮았던 첫 번째 매물의 등기부등본을 떼어 달라 부탁했다. 스스로도 할 수 있었지만, 한번... 떼어달라 해보고 싶었던! 다행히 일단 2019년 신축이기 때문에 갑구/을구 상에서 볼 특이사항은 없는 걸로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 단지가 '조합원 아파트'라는 점.
#조합원 아파트란?
: 조합원 스스로가 사업의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사업에 참여하여 토지구매에서 주택건설까지 책임지고 시행하는 것
[종류] 지역주택조합 (동일한 지역 거주자들끼리) / 직장주택조합 (같은 직장 근로자들끼리)
/ 리모델링주택조합 (공동주택의 소유자들끼리 해당 주택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장점] 처음 계획대로만 잘 진행된다면 일반적인 시행사, 시공사 등의 중간 마진을 줄일 수 있어
일반 분양 아파트에 비해 적게는 10%~ 많게는 30%까지 저렴하게 분양할 수 있다
[단점] 서로 연고가 없는 사람끼리 조합원이 되면 결속력 약화에 따른 분쟁/갈등 빈번
/ 사업좌초 위험성 (횡령, 비리, 갈등 등)
그럼 이미 완공된.. 조합원 아파트를 매수하는 건 아무 상관이 없는 건지 그런 것들이 추가적으로 궁금하여 아 파트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까지 정리가 끝나면 아래와 같이 4가지를 기준으로 매물을 정리하면 좋다.
1. 관심단지와 매물
2. 그 매물의 물리적 하자 여부 (by. 현장 임장)
3. 그 매물의 권리상 하자 여부 (by. 등기부등본)
4. 매도자가 집을 팔고자 하는 이유
더불어 임장은 평일 낮/밤, 주말 낮/밤 등 가능한 요일과 시간대를 각각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낮과 밤의 환경이 생각보다 다를 수 있고 평일과 주말 또한 그 여건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 하나의 시간대만 방문하여 '괜찮다' 싶었다 하더라도, 다른 여건 상에서 그렇지 못할 수 있다. 진짜 내가 살 집인 만큼 하나하나 진짜 꼼꼼하게 볼 필요가 있다.
생각과는 180도 달랐던 부동산 임장을 마치며
부동산 임장은 정말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재밌기도 했다. 살면서 다른 사람의 집을 가볼 일이 거의 없는데 (친구 집을 제외하곤) 단순히 살 집을 보는 것 이상의 여러 가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분들의 직업은 뭘까, 왜 여기에서 사셨고,
앞으론 어디에서 살게 될까,
사람에게 있어 집의 의미는 뭘까,
나는 어디에 살 수 있을까,
약간은 감성 세포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무엇보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었을 새로운 정보들을 임장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깨달았다는 것만으로 정말 의미가 있는 하루였다.
아, 이 땅덩이에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게 쉽지 않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지만
살수록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으쌰 으쌰 해보고 싶다.
으라쌰쌰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