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안녕 Dec 22. 2021

상암동 흡연의 장벽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어제 내가 기획한 영화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상암동을 찾았다. 영화를 사랑했던 학생 시절, 종종 찾았던 한국영상자료원이 위치한 그곳. 오랜만이 찾아가니 감회가 새로웠고 영화를 그만둔 지금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상암동 YTN 사옥 맞은편은 이 지역의 시그니처(?)라고도 할 수 있는 거대한 흡연 장벽이 존재한다. 건물이 있었다면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무슨 이유인지 수년간 아무런 건물도 지어지지 않고 있는 땅 위로는 거대한 장벽을 설치해 두었다. 그곳은 공식적인 흡연 구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곳에서 마스크를 벗고 담배를 피운다. 처음 마주하면 놀라운 이 광경은 그곳에 2번 이상, 최소 1시간 정도만 근처에 머무르면 금세 익숙해지는 광경으로 자리한다. 


문득, 그냥 아주 작은 호기심으로 저놈의 땅은 무슨 땅이길래 저런 장벽을 만들어 둔 걸까 궁금해졌다. 



상암동 흡연 장벽, 그곳은 어떤 땅인가 


궁금해. 상암동 한복판, 좋은 땅 위에 왜 아무런 건물이 지어지지 않는 건지. 그래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들어가 토지를 조회해보았다. 



세상에나 아무것도 조회되지 않는다. 다시, 부동산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 씨:리얼(SEE:REAL)에서 토지대장을 검색해보기로 한다. 이쯤 되니 정말 너무 궁금해. 



오! 토지대장 검색하니 드디어 이 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1610-1'로 면적은 7526.3㎡! 


이 구역은 '일반상업지역/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분류되며, 기타 법령에 따라 '가축사육제한/ 대공방어협조/비행안전/과밀억제/택지개발지구'로 분류된다. 한마디로 일반상업지구라는 것. 근데 왜? 라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살펴보니 소유주가 '시, 도유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 1월 2일에 소유권이 변동된 이래 쭉 시, 도유지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서울시 사이트에 들어가 주소로 검색해보니 해당 토지에 대해 3건 정도 결재가 이루어진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시내의 토지, 건물 등 다양한 형태의 부동산을 일정 부분 시유지로 소유하고 있다. 이런 시유지는 추후 어떤 계획이나 개발 등의 이슈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를 테면 한창 추진된 바 있던 강서구 등촌동의 위탁 개발 부지 '어울림 플라자'처럼 말이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부임하게 되면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다고 하여 여러 잡음이 있기도 하지만)



흡연의 장벽,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이 땅은 서울시의 어떤 큰 그림이나 계획하에 필요하거나 또는 제한으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사연 있는 땅'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곳에서 일하시는 많은 직장인 분들의 '소중한 안식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내내 온종일 동안 최소 20~최대 50명 사이를 웃도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그 장소가 나는 싫다. 


상암동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피부로 와닿는 불편함은 없지만, 비흡연자에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그 앞을 지나자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왜 꼭 그곳이어야 할까? 왠지 방송국이 즐비한 상암동이니 만큼 흡연은 굉장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묘한 우월감이랄까. 


아이러니하게도 흡연의 장벽에는 '흡연 다말 민원 발생 구역'이라고 크게 써붙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요지는 여기는 공식적은 흡연 구역이 아니니 흡연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심지어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더라. 



서울시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 

10년이 가도록 상암동 한복판의 땅을 시유지라는 이름 하에 허허벌판 무용한 땅으로 내버려 두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금연인, 좁은 상암동의 상업 지구에 제대로 된 흡연 구역 하나 만들지 못하면서, 

개개인의 양심과 도덕적 책임을 운운하며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이 과연 유효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왜 이런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를 그냥 내버려만 두는 걸까? 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걸까 

 


상암동을 두 번 이상 지나쳐본 사람이라면 그곳의 존재와 이미지를 기억할 정도인 

'흡연의 장벽'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작가의 이전글 책 한 권을 사고 얻은 다섯 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