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사과는 독약일까

내가 진짜 죄송한 걸까

by 김안녕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표현은, 개인적으로 고맙다는 표현 다음으로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품는 것은 곧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이런 인간적인 감정을 공유할 때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할 때의 사과는 조금 다르다. 일을 하다 보면 죄송하다는 말을 더러 하게 되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내가 진짜 죄송한가?'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이코,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제 실수입니다. 사과드립니다.'


영혼이 없는 건 아니다. 분명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많은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오다 보니 사과가 본래의 의미인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 하여금 어떤 빌미'를 제공해주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사과를 하면 크게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래, 너 때문이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사과를 하면서, 동시에 사과를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만들고 있는 기분이랄까.


나의 말이 나의 가치를 낮게 만드는 듯한 느낌.


빈도수는 확실히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맥락에 있어서도 더 신중하고,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그 의도와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게 임팩트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역시 사과를 할 수 있는, 사과를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함과 미안함을 진심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정도의 인간애를 갖고 나답게 살고 싶기 때문에.


사과를 할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공격적인 사람은 여유가 없다. 여유가 없다는 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자존심도 높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자존감은 낮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고, 받을 줄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될 거다. 내 삶을 나답게 컨트롤하고,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을 지키겠다.


'미안하다'라는 단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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