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하지 못해 글로 쓰는 용기
너는 좋겠다. 그때 나는 정말 하루하루 살뿐이었는데
지난주 엄마와 싸웠다. 서른이 넘어서도 결혼은커녕 독립할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나의 모습이 엄마는 답답해 보였던 것 같다. 마음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겉으로는 또 마음과 반대되는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다툼이 길지는 않았다. 지금쯤 되니 약간은 철이 든 걸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죄책감과 죄송한 마음이 들어 스스로 꼬리를 내린다. '엄마 말은 결국 틀린 게 별로 없어, 늘' 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다툼에서 유독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 엄마는 독립하지 않는 나에게 오롯하게 인생을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했다. 나는 그때, 마치 신이라도 난 듯 반박했다. 요즘 내가 브런치에 쓰고 있는 재테크 글들과 함께 내 투자 통장을 보여주며 이렇게 떠들었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비혼주의는 절대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지. 하지만 나는 혼자 살아도 충분한, 여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 거야. 만약 혼자 살아간다 하더라도 요즘 비혼 세대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필요한 만큼 서로를 보듬고 교류하며 살아갈 거야. 그러니 그런 건 걱정할 게 아니고. 지금은 그런 시대야, 엄마."
물론 이렇게 조리 있진 않았던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뉘앙스로, 내가 무슨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라도 되는 듯이 그렇게나 떠들어댔다. 이때쯤이었을까. 엄마가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너는 좋겠다. 나는 이제 바라는 것도 기쁜 일도 크게 없는데. 예전의 나는 정말 하루하루 살기도 너무 바빴었어."
엄마의 말에 쥐뿔도 없는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모으고 싶은 돈의 액수, 영위해나가고 싶은 삶의 모양을 엄마 앞에서 떠들어대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 때, 나를 둘러업고 맞벌이를 했다. 토요일에도 회사를 나가던 그 시절,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하루 종일 떼쓰는 나를 돌보며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의 나는 당장 나가 작은 원룸의 전세를 살 돈도 없으면서. 생각해보면 나는 가스비를 내는 것도, 전기세는 얼마나 드는지 하는 생활에 관한 걸 하나도 모른다. 내가 말만 떠들어대며 대단한 커리어 우먼 흉내를 낼 때, 엄마는 진짜 커리어 우먼으로 살았는데. 독립의 'ㄷ'에도 근접하지 못한 나 따위가 감히 엄마에게 인생을 논한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는데 대학생 때까지도 매달 용돈을 받았고, 학자금 대출을 하나도 받지 않고 긴 대학생활을 졸업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내게 늘 해준 게 없다고 했지만 나는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과분한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다시 한번 느낀다. 직장인으로 살면서 그런 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왜 나는 더 열심히 장학금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그런 걸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과거의 내가 너무 밉다.
엄마와의 다툼 이후 두 가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1) 나는 아직도 어리석다는 것, 2) 결혼이 아니더라도 하루빨리 독립해서 부모님의 걱정과 짐을 덜어드려야겠다는 것, 그리고 진짜 세상과 부딪히는 삶을 얼른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멍청한 나를 반성한다. 다투고 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한 이야기가 있다.
엄마 미안해.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인생을 거들먹거릴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는 건, 모두 엄마와 아빠 덕분이야. 엄마의 인생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워. 나는 평생을 살아도 아마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이제부턴 내가 엄마와 아빠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 테니 엄마도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하며 하루하루 즐겁고 기쁜 일로 가득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