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네가 싫진 않아
우울이 찾아올 때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숨이 차오르게 뛰거나 땀을 흘려서 다른 것에 몰입하다 보면 몸이 지쳐서 우울할 틈조차 없어진다.
좋은 방법이지만 아쉽게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 우울로부터 무조건 도망가기보다 대화를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왜 나에게 찾아왔는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우울을 떨쳐내야 한다고 느끼는 뿌리엔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편견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지내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학습된 것뿐이다.
분노와 우울이 없었다면 사자에게 잡아먹히거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인간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사이드 아웃 1에서도 슬픔을 회피하려다 라일리의 성격섬들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슬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성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슬픔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요한 존재다.
모든 순간이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병원에 가 봐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기쁨이 아닌 우울을 느낀다고 해서 자신이 이상한 게 절대 아니란 뜻이다.
우울과 대화를 하라는 건 우울의 늪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울을 마주하고 한 걸음만 다가가는 것이다.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우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가장 먼저 내게 온 이유를 질문해야 한다. 처음 나오는 답은 ‘직장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 수 있다. 봐, 역시 내가 바꿀 수 없는 거잖아라고 실망하기 전에 한번 더 깊게 물어봐야 한다. 직장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 이유가 그들이 내 업적을 가로채서라면, 내 업적을 가로채는 것이 싫은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이렇게 한층 한층 꼬리를 문 질문을 이어가면 우울이 곁에 온 이유가 내가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이 경우에 우울이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인정받고 싶어’였다. 그러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하면 된다. 가족이나 친구의 칭찬일 수도 있고, sns에 글을 올려 좋아요를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우울의 이야기를 꼭 우울이 생긴 상황인 회사에서 실현시킬 필요는 없다. 상황은 피상적일 뿐이고 본질적인 것은 ‘인정 욕구가 좌절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우울은 내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때 그 점을 알리러 찾아온다. 그러니 너무 미워할 필요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차분하게 차 한 잔을 내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우울 또한 나의 일부니까 밀쳐내기보단 달래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