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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reeze Nov 15. 2022

늙은 개는 여전히 귀엽다.

털이 하얘져도 몸이 약해져도

고등학교 1학년 여름과 가을 사이, 나는 너를 처음 만났다.

집에 돌아오니 만지면 부서질까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강아지가 푹신한 쿠션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갈색 곱실거리는 털에 곰 인형처럼 생겼는데 움직이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나는 널 만나게 된 게 기뻤다. 하지만 새벽에 학교에 가서 다시 새벽에 집으로 들어오는 수험생 시절이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나만 보면 짖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처음엔 날 외부인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데 나를 반기기 시작했다. 별로 해준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환영받는 기분이란.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가족으로 인정받은 때가 아닐까 싶다.


이젠 9년이란 시간이 흘러 내년이면 벌써 나이가 두 자리가 된다. 초등학교 3학년과 동일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언제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지 그새 너는 갖고 놀던 인형보다 훨씬 커졌고 잔머리도 늘었다.

손을 달라고 하거나 앉으라고 하면 모르는 척하다가 간식이란 소리만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새로 따른 물을 마시고 싶거나 방문을 열고 싶을 땐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쳐다보며 텔레파시를 보낸다. 눈빛만 봐도 슬픈지, 기쁜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사용하는 언어는 달라도 서로가 이해할 것이란 신뢰가 쌓였나 보다.


강아지 나이로 10살이 사람으로 환산하면 50대 후반에서 60대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과 다르게 놀아주거나 산책을 할 때 숨이 차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도 힘들어해서 결국엔 강아지용 유모차를 샀다. 혹시나 아플까 봐 몸에 좋다는 영양제도 샀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는 유모차만 타면 일어서 있으려 하고 약을 먹일 때는 싫다고 도망을 간다.


지금도 넌 담요로 놀아주는 것을 재밌어하고 공을 던져주면 내가 아닌 집으로 가져간다. 잘 땐 배가 보이게 벌러덩 드러누워서 가끔은 코까지 곤다. 어리광을 부리고 따뜻한 품에 안기는 걸 좋아한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는지, 이것 또한 운명인 건지 모르겠지만 우린 그렇게 가족이 됐다. 나의 삶의 거의 반절을 함께해서 이젠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존재가 나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이 슬퍼진다. 그리고 언젠가 빈자리가 있는 시간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상기하게 된다. 되도록 그 시기가 늦게 찾아오길 바라본다.


나이가 들어 혹이 생기고 진한 갈색이던 털은 점점 색이 바래져 연해져도 여전히 우리 집 막내, 아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자식을 여전히 한 두 살의 어린아이로 보는 것과 같이.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러울 우리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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