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teacher)이 아니라 강사(instructor)야.
"나는 선생님(teacher)이 아니라 강사(instructor)야."
함께 TESOL 수업을 듣던 동기들과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무심코 툭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내 직업의식과 정체성을 담고 있었다.
중학교 교사를 꿈꾸던 친구는 퇴근을 하고 나서도 학생들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했다. 그 학생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반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까지. 나로서는 '굳이 그것까지...?'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모르는 것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은 헌신적인 교육자가 아닌 단순히 지식을 잘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처음 TESOL 자격증을 따서 학원 영어 강사로 일할 때부터 명함에 직업을 English instructor이라 적었다. 그리고 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꼭 한 번씩 instructor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다.
"instructor는 강사라는 뜻이야."
"하지만 선생님이니까 teacher라고 해도 되잖아."
"글쎄... 난 instructor이라고 하고 싶어."
- teacher : 교사, 선생
- instructor : (특정한 기술이나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교사]
그때의 나는 아마도 teacher라는 직업이 갖는 사명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저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관심을 받는 게 좋은 '관종'이 좋아하지도 않는 영어를 가르치면서 사명감까지 갖는다는 건 건방지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렇다. 영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영어를 하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넌 영어 강사니까 팝송 추천해 줘, 미드 추천해 줘 등의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진심을 숨긴 채 좋아하는 척하는 것도 지쳤다. 물론 처음엔 그런 척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영어 선생님이니까 영어를 좋아해야지."
"영어 선생님이니까 영어를 잘해야지."
"영어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니까..."
하나둘씩 쌓인 말들이 나를 누르고 또 눌러서 무거워질 때쯤 결심했다.
'그래, 나는 40살이 되면 영어 강사를 은퇴할 거야.'
나 혼자만의 은퇴시기를 정해놓으니 마감일이 코 앞으로 다가온 직장인의 마음을 왠지 알 것도 같았다. 그때부터는 강의가 우선순위가 되었다. 이제 강의할 날도 몇 년 안 남았으니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마음이 급해졌다.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모든 강의를 잡았다. 나는 늘 'YES'를 외치는 강사가 되어 있었다. 오전에는 토익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쯤 퇴근해서 다른 학원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후 강의를 했다. 그리고 주말엔 과외까지.
그렇게 정신없이 살던 때였다.
이동하면서 대충 점심으로 먹으려던 김밥 한 줄을 샀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안전벨트를 매려는 손이 허우적거릴 때였다.
'똑. 똑.'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인기척에 창문을 내렸다. 얼굴을 봐도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불쑥 커피 한 잔과 쿠키 한 상자를 내밀었다.
"저 기억나세요?"
미안하지만 그때의 내 강의는 한 달마다 수강생이 바뀌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나는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수강생들의 이름을 이틀 만에 모두 외우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이전 달 강의에 있던 수강생의 이름들은 금방 잊히기 부지기수였다. 당장 지난달에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당황한 내 표정을 봤는지 그 학생이 웃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제야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다음 학원 시간이 빠듯해서 오래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시계를 힐끔거리는 나를 알아차렸는지 그 학생은 짧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 선생님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어요.
방금 전까지 초조해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밀려드는 호기심을 참지 못 하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서 그 학생을 마주했다.
"무슨 말이야?"
그 친구의 말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내가 해준 면접 썰을 듣고는 용기가 생겨 이전에 포기했던 해외 기업에 다시 지원해서 취직을 했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 그 당시엔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나를 찾아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축하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더 멋지게 축하해 주고 더 감동적인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어색하게 인사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기로 했다.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 전달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들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밥을 몇 공기 더 먹어본 사람으로서.
학생들이 올바른 길을 탐구하고 모색하느라 거친 세상에서 혼자 발버둥 치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학생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조금 더 좋은 도움이 되어보자는 마음을 갖고 나서 강사로써의 내 사명감과 직업의식은 더 단단해져 갔다. 나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그 한 마디가 오히려 나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나는 비로소 스스로를 단순한 지식 배달부가 아닌 교육자라고 칭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내가 강의 말미에 꼭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세상은 꼭 그렇게 행복한 일만 있거나 성공하는 결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때론 넘어질 수도 있고 엄청난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할 수도 있어요. 짜증을 낼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고 울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래도 돼요. 그게 사는 거죠. 하지만 그런 시련이 왔을 때마다 꼭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나를 응원해 주는 선생님이 한 명은 있다는 걸. 저는 항상 여러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나는 모순적인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세상엔 다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만 있을 순 없다.
나 같은 모순적인 사람도 필요하겠지.
그렇게 나는 오늘도 직업란에 강사(instructor)라고 쓰며 선생님(teacher)처럼 행동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