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의 가치는 학생들을 통해 증명됩니다.
"있잖아. 나한테는 무조건 너희들이 중심이야."
3년 전 추운 겨울, 대구에서 방학 특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전에 다녀왔던 마이스터 고등학교 수업이 너무 힘들었고 지쳤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대구로 떠나기 바로 전 날에도 컨디션 조절은 커녕 지인들과 올레길을 걷고 늦은 밤 부랴부랴 짐을 싸서 다음 날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피곤함에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던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 하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던 날 학생들은 내가 제주에서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움과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 제주도 사람이라면 타 지역에 가서 한번쯤은 경험한다는 주목 받는 분위기. 그리고 나는 그런 반응이 익숙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특강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나를 좋아할 거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보이는 학생들마다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별 것도 아닌 '안녕' 이라는 한 마디의 인사에도 학생들은 나를 너무나 좋아해주었고 내게 더 편안하게 다가와주었다. 그리고 내가 자랑처럼 여기며 잘 하는 특기 중 하나였던 '학생들 이름을 외우기' 능력은 거기에 마법의 가루라도 뿌린 듯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방학 특강 수업은 스파르타 형식으로 하루에 10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거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우리반 학생들의 이름 전부를 강의 첫 날 모두 외웠고 심지어 우리반에 놀러온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안녕, 이름이 뭐야?' 라는 말로 거리감을 좁혔다.
그렇게 신나게 인사하며 보낸 강의 첫 날이 지나고 다음 날부터 학생들은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면서 다가와 재잘재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 다른 반 친구들까지 놀러와서 쉬는 시간마다 우리 교실은 시끌벅적해졌다.
거리낌없이 인사를 건네고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나의 행동에 우리 반 학생들은 서로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네며 서먹한 사이 하나 없이 금세 모두가 가까워졌다.
"선생님~ 우리 반은 여고 같아요."
"우리 반만큼 분위기 좋은 반이 없어요."
"애들 다 우리 반으로 오고 싶대요."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 10시간 고된 학습에 힘들 때면 서로 간식을 주면서 응원하기도 하고 졸린 학생들은 먼저 일어나서 강의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러니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점심 시간 이후 학생들이 졸릴 때마다 소소하게 내 이야기를 하나씩 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켜주었다. 무조건 강의만 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흩어진 학생들에게 그 내용이 이해될 리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점점 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짜리 방학 특강의 중반쯤 되었을 때, 선생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운영 부장님이 내게 카톡를 보냈다.
선생님, 강의 반응이 좋아서 그런데 혹시 여기 특강이 끝나면 제주로 돌아가지 마시고 다른 특강 하나 더 해주실 수 있나요?
강의 제안을 받은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그 메세지가 나에게 아주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강의 반응이 좋다는 그 한 마디가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아직 강의 중반이었기에 강의 평가를 한 것도 아닌데 운영 본부에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는 건 특별한 의미였다.
차마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말하지 못 하고 빨리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학생들이 하나하나 다 반갑고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또 여느 때처럼 식곤증이 몰려와 학생들의 눈이 하나 둘씩 감기려 할 때쯤 말을 꺼냈다.
"내가 강사를 하면서 가장 잊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
강사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 오로지 학생을 통해 증명된다.
졸린 눈을 하고 있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눈을 비비고 나를 쳐다봤다.
"있잖아. 나한테는 무조건 너희들이 중심이야.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듣고 재밌다고 하면 그거면 된 거야. 나는 여태까지 그렇게 강의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강의할 거야. 그리고 나는 너희가 내 강의를 좋아해준 덕분에 이 캠프가 끝나고 제주로 가는 게 아니라 바로 다른 지역 강의를 하나 더 하고 제주로 돌아가기로 했어. 내가 강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내 강의를 재밌어 해줘서 나의 가치를 인정 받게 된 거야. 그래서 난 너희가 너무나 고마워."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학생이 강의실을 나갔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으로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울고 왔다고 했다. 그래도 내 진심이 통하는 구나,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친구들이구나. 또 한 번 감사했다.
학생들에게 나눠 줄 귤을 아빠한테 보내달라고 했다. '귤수저'의 힘이었다. 중요한 모의고사를 보기 전 날에는 피곤할 때 챙겨먹으라고 초콜렛을 나눠주며 작은 쪽지에 각 학생에게 보내는 짧은 메모를 남겼다.
그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강의 마지막 날 아이들은 나를 위해 작은 파티를 해주었고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롤링페이퍼 북을 선물 받았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사 인사와 다정한 말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내가 강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힘들 때면 한 번씩 찾게 되는 나만의 보물 같은 것이 되었다.
학생들의 응원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고 긍정으로 가득 찬 강의 평가는 이후에 나를 다른 큰 강의로 이어주는 발판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내 가치가 학생들을 통해 증명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도 학생들의 반응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내 강의의 유일한 목표는 학생들이 즐겁게 배우는 것, 그거 하나 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학생들을 통해 증명되는 강사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