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나는 영어를 전공하지 않고 영어 강사가 된 사람이었다.
20대 후반 어쩌면 늦은 나이에 같이 일하던 분이 ‘강사하면 잘 할 것 같은데…’라는 한 마디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덜컥 숙명여대 TESOL 과정을 등록했다. 그렇게 영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TESOL 자격증 하나를 가지고 나는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대학생들을 가르칠 거예요.' 참 당돌한 말이었다. 터무니없는 말이기도 했다. 학위도 없는 주제에, 해외 유학도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인가.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고 느꼈는지 들은 척 만 척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서울엔 날고 기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수두룩 했고 손꼽히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가진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영문학 학위조차 없는 영어 선생님이었다. 아등바등하며 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꽃밭이 아니었고 결국 나는 다시 제주로 돌아가려 짐을 싸기로 했다.
제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일을 할 곳을 찾아야 했다. 무심코 들어갔던 취업사이트에서 익숙한 학원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9개월 정도 행정업무를 했던 토익 학원이었고 그 원장님 수업을 수강한 제자이기도 했다. 원장님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력서를 제출했다.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한숨을 푹 쉬며 고생길을 자처하는 나를 타박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전화가 왔다.
개인 친분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가해달라며 원장님께 이력서와 강의 경력, 강의 영상 대신 음성 녹음을 보내 놓고 긴장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메일을 보낸 지 몇 시간 만에 원장님은 지금 당장 내려와 같이 일하자며 남은 월세까지 다 지불을 해주셨다.
내가 꿈꿨던, 얼토당토 않은 그 다짐.
‘꼭, 언젠가는 대학생들과 수업을 할 거야.’
그 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한 3개월간은 수업 자료 준비를 하느라 매일 새벽 2시가 넘어서 자고 아침 수업을 가느라 7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매달 토익 시험을 내 사비로 접수해서 시험을 보고 기출 자료를 만들어서 시험 바로 다음날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토익 시험은 한 달에 두 번이었고 나는 시험 이후 자료 만드는 작업을 하느라 시험을 본 당일 하루는 통째로 일을 했다. 즉, 토익 학원에서 일했던 3년의 시간동안 나는 한 달에 2번 주 6일 근무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월급은 3년 내내 대략 180만원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물어본다. 대체 3년을 어떻게 버텼냐고.
버티는 삶을 살지 말자고 다짐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그냥 그대로 무식하게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한 엄마와의 이별로 제주에서 사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난 부산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원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대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왔는데 나를 강사로 추천하셨다고 했다. 교수직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대학교 소속 사업단의 시간 강사 자리였다.
꿈만 같았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교양 강의를 들었던 강의실에서 내가 강의를 하게 되다니.
그리고 난 그 강의를 시작으로 다른 대학에서도 방학 특강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10년 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던 내가 말도 안 될 것 같았던 꿈을 이뤄낸 것은 아마도 무식하게 내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하게 한 덕분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지름길을 찾는다. 한 달 만에 천만원 벌기, 2주 만에 00kg 감량하는 법 등등. 하지만 나는 내 경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꼭 이야기해주는 것이 있다.
‘인생에서 견디는 시간은 필요해. 견디는 시간은 사람마다 달라서 누군가는 수능 공부를 하며 견디는 시간을 보내고, 또 누군가는 취업준비를 하며 견디는 시간을 보내지. 아니면 나처럼 일하면서 견디는 시간을 보내기도 해. 그리고 그 견디는 시간을 통해 인생이 바뀌는 거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이렇게 대학생인 너희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줄이야.'
지름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자리에서 견디며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나는 무식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