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똑같은 이름이 많은데, 왜 사람 이름이 고유명사예요?
"아, 그래서 나는 소중한 거구나."
내가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했던 다짐들 중 한 가지는 문법을 쉽게 가르치자는 거였다. 나 역시도 문법이 너무나 싫었고 학생들의 인식 속에 문법은 '외워야 하는 것'으로 박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똑같은 문법도 되도록이면 쉽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이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걸 고민해왔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도 문법을 설명할 때는 되도록 문법적 용어를 쉽게 일상에 비유를 해가면서 설명하곤 했다.
그렇게 대학생이나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만 하다가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하는 하는 수업은 참 오랜만이었다. 성인들과 달리 학생들은 학교 내신 등의 시험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법을 조금 더 디테일하고 복잡하게 들어가야만 했다. 내가 해온 강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영어 교육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대신 학생들에게 많은 비유와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곁들여주곤 한다.
몇 달 전, 토플 수업을 하던 때였다. Primary 2 레벨이라 굳이 문법 수업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독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기본적인 문법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하니 필수 문법만 알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의 수업 주제는 명사였다.
고유 명사(Proper noun) : 낱낱의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여 부르기 위하여 고유의 기호를 붙인 이름. 문법에서는 명사의 하나이며, 영어에서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쓴다.
"고유 명사는 다른 것들과 구분 하기 위해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걸 말해. 예를 들면 Jeju(제주), OO middle school(oo 중학교), 너희들 이름처럼."
내 설명을 듣던 한 학생이 궁금한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그리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게 질문했다.
"근데 저랑 성도 똑같은 친구도 있거든요? 세상엔 똑같은 이름이 많은데, 왜 사람 이름이 고유명사예요?"
"아 그건 말이야. 고유 명사로써의 이름은 너가 가지고 있는 성격, 너의 DNA, 가족관계, 친구관계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 게 너의 이름이야.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느 날 내가 길을 가다가 너와 이름이 같은 그 친구를 만났어. 근데 내가 '너도 이름이 민석이구나? 민석이는 선생님의 제자야' 라고 말했어. 근데 아무리 내 앞에 그 친구가 있다고 해도 선생님이 말한 민석이는 너지 그 친구를 말하는 건 아닌 거야."
그제서야 그 학생의 얼굴에 피어났던 궁금함이 서서히 사라진다.
"고유 명사로써의 이름은 말이야. 이 세상에서 유일한 거야. 이름은 똑같을 수 있어. 하지만 너의 존재와 연결되는 이름은 단 하나 뿐이잖아. 만약 이 세상에서 네가 사라진다고 하면 너는 멸종되는 거야."
"아 그러네~"
멸종이라는 비유에 학생들은 재미있었는지 너도 나도 서로를 향해서 이름을 부르며 '우린 멸종 위기종이야.' 라고 재잘거린다.
아, 그래서 나는 소중한 거구나.
한 학생이 깨달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너희는 멸종 위기종이야. 너희도 학교에서 배웠지? 멸종 위기종에 대해서?"
저마다 하나씩 자신이 알고 있는 멸종 위기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난리가 났다. 늘 딱딱하게 선생님의 설명만 듣는 따분한 문법 수업을 지양하는 나로써는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신나게 나오는 순간이 참 소중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너무 과해지지 않게 학생들의 말을 멈추고 다시 수업에 집중을 시켰다.
"우리는 멸종 위기종 동물들을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배웠지? 그것처럼 너희도 이제 스스로가 멸종 위기종인 걸 알았으니까 자기 스스로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서로서로를 소중하게 대해줘야 해. 우리는 하나하나 고유한 고유 명사니까. 이젠 왜 사람이름이 고유 명사인지 알겠지?"
학생들의 대답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날 수업했던 명사에 대해 다음 시간에 질문했을 때 학생들은 다른 건 다 홀라당 까먹어놓고 고유 명사 하나 만큼은, 사람이름이 왜 고유 명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