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56일 남았다

끝이 있는 시작에 관하여

by 오늘도맑음


2015년 2월 2일.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나는 수백 명의 동기들과 함께 입사했다. 흔히 말하는 3,6,9와 꼭 똑같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위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다가 어느덧 위기가 해제되거나 회사원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때로는 소비하는 재미에 빠져버려서, 결단을 하지 못하곤 했다.


만약 그만두고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깊은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만약 그만두고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돌아갈 수도 없는데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하고 그야말로 망해버리면 어떡하지. 그 두려움에 기름을 붓듯 선배들은 말했다.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직장은 전쟁이지만 밖은 지옥이라면서. 그렇게 흘러 흘러 어느덧 만 6년을 앞두게 된 올해. 꾹꾹 눌러두고 감춰두었던 꿈 하나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나와 머리를 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 정확히는 글로 먹고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해본다. 이 실낱 같은 꿈이 6년간의 회사생활과 바꿀 수 있을 만큼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프로젝트. 2월 2일 하루 전날까지 글을 써본다. 글과 일상을 병행하면서, 어떤 것이 더 나다운 삶인지, 즐거운지 알아보도록 한다. 끝이 있는 글쓰기 프로젝트의 시작. 그 첫 번째 글이다.


"처음하는 안녕과 마지막의 안녕이 가장 어렵다" 출처: https://images.app.goo.gl/bwr2jXT76Xe1CAVQ9

이 인용구를 빌어보자면,

이 프로젝트는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려는 계획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사실 변화를 싫어하는 내게 새로운 시작이란 설레기보다는 헤어짐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일이었다. 졸업할 때마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고, 부서를 옮기거나, 이사를 하거나, 심지어 연애의 시작조차도 눈물과 함께였다. 친구였던, 썸남이었던 사이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오죽하면 지금 연애를 시작할 때 당시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에게 언젠가 헤어질 수 있으니 너무 마음을 주면 안 된다는 이상한 조언을 했을까. 이런 내 성향 덕분에 지난 회사생활은 멀어질 듯 멀어질 듯 멀어지지 않고 이어져왔다.


그런 내게 더 헤어짐보다도 더 고역인 일이 있으니, 5천만 한국인이 다들 싫어한다는 기다림이다. 특히나 기약이 없는 기다림은, 단 1분을 천년처럼 느끼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연락드릴게요."라는 담당자의 대답은, "죄송합니다"라는 반응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고, 그 며칠 동안 온갖 종류의 나쁜 결과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부작용까지 있었다. 굳이 좋은 점을 한 가지 찾아보자면, 이미 최악을 다 상상해놓았기 때문에 충격이 덜하다는 부분 정도라고 할까.


그러니 사실 이 프로젝트는 기대되기보다는 염려가 앞서는 시작이다. 매일 내가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압박감이 있고, 수십 번의 인내와 (스스로에 대한) "기다림"의 끝에는 진짜 "마지막"까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는 그런 일. 마지막까지도 가기 전에 슬그머니 이 글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충성 충성하면서 커다란 건물에 똑같은 책상에 앉은 수천 명의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어 업무 시스템에 접속하고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그러나 끝만 정해둔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운동회의 꽃 달리기 https://images.app.goo.gl/UgaQ4HNqoLWaJzGQ7

초등학교 운동회 육상 경주에서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결승점이 보인다. 올림픽이나 마라톤처럼 거창한 경기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숨이 벅차게 달려야 하는 그런 달리기. 그 달리기와 닮은 이 프로젝트도 이렇게 시작해볼 수 있겠다.


준비, 탕!



덧. 요이땅은 준비, 탕! 을 말하는 일본어의 잔재로, 우리 말로는 준비, 시작! 또는 준비, 탕(총소리)라고 쓰는 것이 맞다고 한다.


*표지 사진 출처 :https://images.app.goo.gl/oEc35BtJrsuBsZ9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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