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성공은 운명적

총,균,쇠 : 성공은 환경에 의해 운명적으로 결정된다

by 오늘도맑음
untitled.png 2005년 판의 표지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람이었어.


이 노래가 유행한지도 어느덧 30년이나 지났다. 우연과 운명의 차이는 죽기전에나 구별할 수 있는 것이라지만 긴긴 세월을 영위해온 인간사회에서의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은 동일선상에서 출발했던 각 사회가 각기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 데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된다. 원래 유럽사람들은 강대국에서 살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아프리카 대륙은 발전 속도가 더디었어야만 했을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뤄졌던 각 대륙 간 교역의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들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즉, 최초의 인류가 비슷했던 모습이었던데 반해 각 대륙의 발전과 성장양상이 판이하게 달랐음을 지적하고, 그것의 원인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리적, 환경적 요인들을 통하여서 분석한다. 저자가 제시한 주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가축화와 작물화의 과정에서 재배할 수 있는 동식물의 종류가 정해져있었고, 대륙에 따라 그 분포에 차이가 났으며 이로 인하여 농경 또는 채집을 선택하게 되면서 발전양상에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특정 기술이나 작물이 개발되었을 때에 그것이 확산되는 과정과 그 이동 속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각 대륙마다 다르게 분포한다는 점이다. 특히 위도가 동일한 지역은 비슷한 식생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동서로 길게 뻗은 유라시아 대륙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보다 유리했음을 지적한다. 세 번째로, 대륙간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도 있었는데 여기에는 인구의 조밀도 및 대륙간 간격 등이 제시되었다. 마지막으로륙의 면적과 인구규모에 따라 그 발전 정도와 속도에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800x419_ratio.jpg

저자는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하여 “하필이면 유럽국가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정복하였는가, 그 반대는 불가능 했던 걸까?”라는 질문에 충실히 답변해 나간다. 그 방식으로 고고학적, 지리학적, 지질학적, 인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을 전달하여 내용을 구성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이 결과적으로 각 대륙 간 차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을 사용한다. 저자의 폭넓은 지식과 과학적 근거들을 통해 그 시대를 재구성하고, 단순한 나열이 아닌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엮어가는 점에서 뛰어난 통찰력이 엿보였다.


특별히 광대한 대륙과 긴 시간흐름 속에서 인류의 발전과정을 되짚는 과정에서, 인종이나 민족간의 우열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나 지리적 요인들이 그 발전 양상이나 방향을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탁월한 설명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특정 병원균에 의해서 아메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죽게된 이유를, 단순히 구대륙의 병원균이 처음으로 넘어가서 면역력이 없었다는 단순한 흐름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때까지 동식물의 가축화의 가능성 또는 그 정도에 따라서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되는 정도가 달랐고,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물론 누적된 사망자의 수로 따진다면 각 대륙별로 천연두나 홍역으로 인한 사망자가 비슷할 수 있을 테지만, 너무 단기간에 높은 사망률을 경험함으로써, 병원균의 감염으로 인한 영향은 아메리카 대륙의 주민에게 훨씬 더 가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하여, 우연의 산물처럼 보이는 인류의 대륙별 분포는, 주어진 환경이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마치 “운명적으로” 사회의 양상을 결정짓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되 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임의적으로 분포된 환경의 영향이 이렇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역시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겠다.(이렇게 저렇게 복잡한데, 결국엔 유럽이 이겼다?) 탁월한 시각으로 매끄럽게 그려내고 있지만, 저자의 전제에 대해서 몇가지 고찰할 바가 있어서 정리를 해본다.



1. 무엇이 발전인가에 대한 고찰

이 논의는, 저자가 앞서 지적했듯 유럽인의 우월주의를 배척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논박이다. 즉, 저자역시 인류의 발전과정이 특정 인종의 우월성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못 박고 있으며 오히려 그가 제시한 가설과 이론이 인종간의 격차를 반박하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은 얄리의 질문에서 파악되듯, 화물차와 같은 쇠나 총기류를 갖고 있는 것이 더 발전된 사회의 증거라는 전제를 수용하고 있다. 그 기후나 환경에서 필요하지 않았던 분화된 사회조직과 계층제, 쇠로 만든 도구의 사용 등을 수용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일까? 오히려 저자가 지적하듯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독한 사막 기후에서 일사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그들에게는 발전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필요이상의 노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사회구조나 경제구조를 복잡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도구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더 큰 불편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각 대륙의 격차가 생겼다는 저자의 표현과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미 유라시아 대륙의 복잡한 문물을 발전으로 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 그렇다고 가정했을 때에만 의미 있는 논의인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교역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혹은 가능했더라도 보다 점진적인 방식으로 과학이 발달한 시기에 일어나서, 병원균의 감염 등 새로운 위협에서 안전했던 경우라면, 지금과는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경쟁 지향적 시장의 존재

경제사에서는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그 연구대상으로 한다. 이 책은 경제사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은 아니므로 시장의 형성이나 그 발달, 또는 국민소득이나 경제적 부의 개념을 발전으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특정대륙이 발달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외부와의 잦은 접촉과 인구 밀도가 높은 것을 들었다. 이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에 비해서 유라시아 대륙이 갖고 있던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사실, 즉 접근성이 높으며 인구가 오밀조밀 했다는 사실과 특정대륙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연결할 때, 저자는 경쟁으로 인하여 성장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즉, 경쟁을 통한 최적화의 원리가 사회에도 적용되므로, 개인간 또는 사회간 경쟁압력이 지속되는 곳에서 발전과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의 경우에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것들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아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 무기나 여타 다른 문물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다윈의 자연선택론도 같은 맥락에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사회현상에서 교역의 성립여부가 시장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저자가 제시한 두 가지 사실의 연결고리로서 경제학적인 고찰도 가능할 수 있겠다. 먼저 개인측면에서보면, 각 개인은 먼 미래의 생산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산성을 최대로 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의 농경이 공유지의 비극 문제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각 개인 최적화 전략이 누적되었을 때 사회 간 차이는 각 사회가 놓여진 제약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즉, 모든 사회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최대 이익을 위하여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속한 경제체제가 완전시장에 가까울수록 (즉 교역이 쉽고 접근성이 높아 모두가 가격수용자로서 행동하며, 정보가 완전한 시장일수록) 국민소득이 높고 후생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가정이 역사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으리란 것이다. 경제성장론에서도 지적하듯 이러한 경제적 부의 증가가 반드시 행복증진과 연관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3. 유럽이었어야만 했던 이유


어떠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에 영향을 미친 원인변수들을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이 때 사용되는 방법 중에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는데, 필요조건의 경우에는 A가 존재해야만 B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분조건의 경우에는 A가 존재하면 B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았을 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이어야만 했던 그 필요조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같은 유라시아 대륙에서도 중국과 유럽대륙의 국가들을 비교하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유라시아대륙의 중국과 같은 국가는 유럽국가에 비하여 총, 균, 쇠 라는 세 가지 요인이 결핍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발전된 양상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총,균,쇠라는 요인이 충분조건이라면 중국도 성공을 했어야 한다.)



동일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유럽이어야만 하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 영향으로 인하여 유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왜 하필이면 중국이 아닌 유럽만이 제3국가를 정복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앞서 제시한 네 가지 요인에 의하면 유라시아 대륙으로서 유럽과 중국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한 중국의 중앙집권국가로서의 모습, 또는 정치적 영향력 등은 어떤 의미에서는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였으므로 독립적인 원인 변수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유럽이 “발전”한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그 원인이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내세워서 타 대륙을 점령하려거나 약탈하려는 시도는 그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개념화하기 어렵지만, 유럽인과 중국인의 성향 또는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에는 피사로 등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도덕적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중국과 유럽은 그 사상적 흐름이나 사고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혹은 저자가 지적했듯 히틀러를 막을 우연적 사건이 불발에 그쳐서 유태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것처럼, 외국과 교역하려 할 때 이를 막을 수 있었던 제도나 사상의 존재가 유럽과 중국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 입장에서는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재앙에 가까운 현상이었으므로, 그 침투를 막을 수 있던 우연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유태인만큼이나 아쉬워 할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추측은 18세기와 달리 19세기 말쯤 이르면,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대량학살 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아 뉴기니의 산중턱의 원주민들이 그 생활 터전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저자의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즉, 18세기의 유럽인들의 성향과 그것을 부추기는 시대적 흐름(trend)이 존재했고, 그것이 전면 금지되었던 중국과 달리 아메리카 침략이 유럽인을 통해 이뤄지게 된 이유가 된 것이다.



4. 환경결정론적 시각

<총, 균, 쇠>라는 책은 특정 환경이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과정과 그 결과를 해석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유럽인의 우월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국에는 “운명적으로” 환경에 의해서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관념이 짙게 깔려있다. 이는 만여년에 걸친 인류역사의 기원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건들이 이미 다시 원인변수가 되어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류의 발전양상 역시 미리 내정되어있을 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 일종의 경향성에 대해서는 분석하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마지막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 있고, 먼 훗날 어떤 사람은 또 오늘의 이러한 차이가, (마치 작물화의 차이가 병원균 노출정도를 결정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먼훗날 정복의 역사가 달라진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래를 결정짓게 되었다고 분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에 미치는 개인의 영향 등을 지적하면서도, 거대한 경향성은 역시 환경이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객관적 시각이라고 하더라도, 또다른 운명론(우생학적인 것은 아니지만..)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나, 환경이라는 독립변수가 같다고 하더라도 각 개체의 양상은 다양하며 그 역시도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각 사회별 유의미한 경향성을 파악하기에는 환경 결정론적 시각이 적합할 수 있으나, 이는 자칫 회의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은 매우 작아 보이는 환경의 차이가 실제로는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사료를 사용하여 그것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 매우 매끄럽고, 탁월하다. 이를 통해서, 인류의 발전양상이 대륙별로 큰 차이를 보였던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방향이라는 것도 대륙별로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전제로서 복잡한 현대사회를 발전된 모습으로 상정한 점에서 균형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 중 중국과 유럽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유의미한 고찰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미 결정된 사실에 관하여 결과론적으로 둘의 차이를 단순히 나열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여기서 제시했던 요인들 (사상, 도덕적 판단) 역시 중국의 반례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다. 마지막으로 환경 결정론적 시각에 대한 고찰이다. 이는 운명론 및 회의주의로 빠져들기 쉬운 영향을 가질 뿐 아니라, 실제 모든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역사학의 특징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환경이 이 모든 경향을 결정지었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사료와 지질학적, 인류학적, 언어학적,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의 통찰은 인류의 발전 양상에 대한 하나의 탁월한 시각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덧. 저자의 최근 강의를 보면, 사회의 흥망성쇠의 조건conditions에 주변국과의 관계, 환경적 요인, 이해관계 등 개별 행위자 차원의 요소와 사상까지 포함하여 보고 있다. 환경을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해결가능하다고can solve 보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게 된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HGMftDvVR6I








<인사이드 다음>에 소개되었어요

ㅇㅇㅇㅇㅇ.png 인사이드 다음화면 우측 상단에 이 글이 소개되어있네요! 감사합니다


*배경 그림 출처 : http://www.discoversociology.co.uk/worldsociology/why-some-countries-are-rich-and-others-are-poor

keyword
이전 03화보이지 않는 손인가, 악마의 맷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