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정복자,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하여

<정복자펠레>에 대하여. 그리고 모든 노동자에 대하여.

by 오늘도맑음


영화명 : 정복자 펠레 Pelle Erovraren, Telle the Conqueror

개봉년월 : 1989년 7월

러닝타임 : 157분

한줄평 : 모두가 원하는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삶이 가능하긴 한걸까.

일요일 아침 커피 한잔으로 대변되는 안락한 삶을 얻기 위한 모험기.



노동자와 고객,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 여러가지 단어 대비에서 보여지는 "노동자"의 의미는 대부분 약자의 입장이다. 귀납적이고 경험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언제든 다른 옵션이 주어지는 자본과 달리, 노동의 제공은 탈출 전략(exit option)이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금융/화폐까지 통합된 상황임에도 노동시장의 통합이 사실상 어렵다고 드러난 것처럼, 언어와 문화의 장벽 등으로 인해 자본에 비해 노동의 이동은 자유롭지 못하고, 이는 시장분리 현상으로 이어져 불평등을 낳게 된다. (더 낮은 임금, 더 효율적인 노동시장을 찾아 자본이 이동하는 경향). 그 장벽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조건과 삶을 찾아 이주하는 노동자의 모험(?)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여기 그 중 하나인 19세기의 라세와 펠레가 있다.



이 영화는 이주 노동자의 삶을 섬세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굵직한 스토리보다는 자잘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보다 현실성 있고 실재감 있게 다가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스웨덴의 많은 노동자들이 집단농장이 발달한 덴마크에서의 취업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넘어왔는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삶의 표본으로 이주노동자 부자(父子)-라세와 펠레-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라세는 스웨덴에서 취업을 하고자 하나 쉽지 않았다. 해가 뉘엿 저물 무렵 마지막으로 찾아온 스톤농장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따라갔으나, 닭장과 같은 마구간에서 아들과 함께 지내며 일하게 된다



돈이 좀 모여서 조그마한 집을 사고,
아들을 돌봐줄 여자를 만나,
일요일 아침에는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그들이 원하는 것은 라세가 말하듯, “돈이 좀 모여서 조그마한 집을 사고, 아들을 돌봐줄 여자를 만나, 일요일 아침에는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소박한 소망 역시 무참하게 짓밟히고, 단지 ‘문맹 늙은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채 노동현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소외되기 십상이었다. 펠레 역시 처음에 아버지에게 안겨서 농장에 왔을 땐 수습 감독관에게 놀림을 당하고도 반박하지 못하는 어린애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에릭을 통해 꿈을 꾸게 되고, 또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느린 화면전환과 스토리 전개로 인해 잠잠하고 차분하게 일상을 그려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격양되는 장면은 에릭이 다치기 직전 감독관에게 대항하는 것과 자신의 조카에게까지 욕정을 품은 남편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여주인의 모습을 그린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두 장면 모두 허망하게 돌에 맞아 지능을 잃어버리는 에릭의 모습과, 여전히 농장의 주인으로 라세에 대한 소문에 코웃음을 치는 콩스트룹으로 결론이 맺어져 결국엔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았다. 영화가 그려내는 작은 사회-스톤농장-에서 보여주듯 개인은 부조리한 사회에서도 그저 적응하며 살아갈 뿐, 그 사회를 바꿀 힘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에릭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아버지의 재혼의 꿈도 박살난 이후, 결심한듯 떠나는 펠레의 여행이 희망에 차있기 보다 오히려 비장한 것은, 그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 혹은 세계 정복)의 실재는 스톤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정복자 펠레라는 제목은 그가 미래에 미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소설 <화수분>이 그러하듯 역설적 제목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는 찢어지게 가난하나 이름은 돈이 넘친다는 뜻의 화수분이라는 인물처럼, 학교에서도 농장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정복자’라는 제목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레는 소심한 아버지와 달리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실현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에릭의 말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가 자신의 꿈을 펼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농장을 떠난 펠레의 삶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적어도 그의 친구 루드가 서커스단에 들어가 그의 꿈을 이루었듯, 현실에 안주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젊음의 모습에서 희망이 아직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펠레의 태도는 이주노동자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여행하기는 너무 늙었다.”는 아버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젊음 그 자체와 젊은이만의 패기가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북유럽-덴마크의 풍경과 계절을 풍성하게 담아내면서, 동시에 소박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의 삶을 자연과 대비시키듯 나열하는데 그치는 것 같으면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묵직한 무게감을 선사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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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대학교 <경제사> 수업에 제출한 레포트를 바탕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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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출처 : https://www.emozak.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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