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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Aug 23. 2022

글 쓰는 게 어려워진 이유 : 깎여 나가는 중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글을 썼었다. 브런치는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쓰는 글이 단순한 사고의 기록이 아닌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브런치를 시작할때쯤을 기점으로 오히려 글을 쓰는 빈도가 확 줄어버렸다.

‘바빠서’ 라고 핑계를 댄다면 거짓말이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늘 영감을 받고 이것을 표현하게 직업인 사람이 바빠서 글을 쓴다는 건 애초부터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글 쓰는 빈도가 줄었을까,

큰 수술을 하고 1년을 쉬었던 작년 한 해는, 살면서 느끼게 된 가장 큰 고통의 순간 중 하나였지만 아이러니하게 나를 돌아보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고 방향을 잡아갈 수 있게 된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투병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로서 존재’만 했던 시간,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오롯이 내 선택에 따라 움직이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마음껏 사고했고, 하고 싶은 노래를 하며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던 그런 시간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 선물 같이 주어진 순간이었다.

투병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고 또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며 바빠졌다. 사실 내가 원하는 그림이었다. 남들과 같이 일하고, 남들과 같이 공부하고, 남들과 같은 궤도에 서서 뒤처지지 않는, 평균은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 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매우 기뻤다. 하지만 궤도에 올라선 대신, 나는 포기해야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오롯이 내 의지대로 느끼고 사고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
시간적 여유가 줄어서가 아니다. ‘가공되기 시작해서’이.


<예민하다>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나의 예민함은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재능이나 다름없는 하나의 능력이었다. 학교에 나와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나의 예민함은 곧장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때까지 그러한 ‘예민함’으로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물여섯, 세상을 살아가는 미생에게 ‘예민함’은 이상하게 ‘예민함을 가져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에게 금기시 되어야 하는 감각이었다.
나는 적당히, 알아서 굴러야 하는 사람으로 깎여나가는 중이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나 슈퍼맨 같은 존재가 되어서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처받은 치유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역경을 딛고 극복한 사람으로서 똑같이 상처받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사회의 불합리함이 반복될 때, ‘그건 틀린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진짜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순간이 있었고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틀린 게 되어버린 순간이 있었다.

‘와 너 정말 예민하다.’ ‘너 감정적인 사람이네’


이전까지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걸 잡아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칭찬의 말이었는데 올해는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틀린 사람이라는 걸 낙인찍는 말이었고, 내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그런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표현을 하지 않게 되었고 적당히 눈치보고 적당히 구르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회화’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니, 나는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졌다. 이전보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줄었고 해야 할 말이 줄었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전에는 거침없이 쏟아내고 표현했다면 이제는 재기 시작한다. ‘아 이런 말을 하게 되면 나한테 불리하겠구나. 약점이 되겠구나. 예민하다는 소리를 듣겠구나.’


교수님이 처음 입학했을 때 우리를 ‘원석’이라고 했다. 그 원석이 잘 닦여져 다이아몬드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 나는 깎여 나가는 중이다.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깎여 나가는 사라지는 중이다.


+)예민한 이는 경이로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깎여 나가며 사라지는 와중에  입을 다물어야했던 예민함의 흔적들은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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