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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Aug 29. 2022

[배우입니다]예술 말고 다른 것(2)

나의 오빠들

몇 달 전, 한국장학재단에서 실시하는 예술체육비전 장학생에 선발이 되어 한 장학금 관련 단체와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처음 진행해보는 단독 인터뷰 촬영에 꽤나 긴장을 했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예상 질문을 듣곤 얼추 머릿속에 예상 답변을 정해놓고 촬영에 들어갔었다. 촬영이 끝났다 싶을 때쯤, 인터뷰어님이 짓궂은 질문을 던지셨다.

‘정연씨의 이상형은 뭐예요? 듣기로는 축구선수 손흥민 선수와 이재성 선수를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맞다. 이 글에서 수줍게 ‘덕밍아웃’을 해보자면 나는 이재성 선수와 손흥민 선수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그들은 나의 단순한 ‘오빠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우상이었고 내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늘은 나의 그 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인터뷰 장면 중



18살 때부터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했다. 이후 끝이 보이지 않는 공황장애와의 싸움에 하루하루를 참 버겁게 버티며 살았다.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 26살의 나는, 18살 때는 차마 생각도 하지 못한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그 힘의 8할은 나의 ‘오빠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 덕분이었다.


2015년, tv에서 호주와 우리나라의 아시안컵 결승전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였다. 후반이 종료되기 직전, 손흥민 선수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고 관중석으로 달려가 우리나라 팬들에게 ‘이길게요!’를 외치는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을 본 게 내 입덕의 시작이었다. 경기는 호주에게 졌지만, 난 경기가 끝난 이후 손흥민 선수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경기에 져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저 경기에 최선을 다했으면 저런 눈물이 나올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 열정을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삶에 매너리즘이 오면 꼭 보는 영상이 있는데 이 또한 손흥민 선수의 영상이다. 4년 전, 러시아 월드컵서 독일전이 이기고 휘슬이 불자마자 주저앉으며 땅을 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모습. 해내고야 마는 그 모습은, 내가 나태해질 때 나를 잡아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독일전이 끝나고, 손흥민 선수의 모습



이재성 선수는 최근에 팬이 되었다. 축구선수로서의 이재성 선수는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팬이 된 건 최근이다. 초록창에 이재성 선수가 연재하는 ‘이재성의 축구일기’를 보고 그의 글솜씨에, 자기 관리에, 깊은 생각에 감탄했다. 이미 축구로도 우리나라 주전을 꿰찬 선수가,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도 저렇게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이 선수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글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꼈었다.  

이재성 선수와 함께



지금은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좋아한다.
처음 손흥민 선수에 빠진 이후로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피켓팅’을 해가며 맨 앞자리를 예매해 직관을 가곤 했는데 그때 축구의 매력에 빠졌다. 그날, 나는 관중들과 선수들이 호흡해서 만들어 나가는 열기가 그렇게 뜨거운지 처음 알았다.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tv에서 볼 때와 차원이 달랐다. 선수들의 몸싸움도, 달리기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땀방울과 모든 것들이 그렇게 치열한지 처음 알았다. 90분 동안 팽팽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짜릿한 템포가 너무 좋았다. 고작 그 90분 동안 16부작 드라마 한 편을 다 본 기분이었다.


올해 학교와 현장을 병행하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고 현장에 나가면서 늘 조급함이 깔려 있었다. 매사가 불안했고 여유가 없었다. 모든 일에 악바리를 썼다. 사람들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과 학교 공부에만 매진을 했었다. 말을 하지 않아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살다가 견디지 못한 내가 한 선택한 일은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학교 축제 기간이라 한창 동아리배 축구 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경기가 있는 날마다 혼자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서 모든 경기를 다 챙겨 봤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축구가 아닌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축구를 하면서 저렇게 건강하게 땀을 흘리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또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모두 나와 다른 모습이었다. 숨 돌릴 틈 없이 폭주하는 고장 난 기관차가 아닌 흘러가는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k리그 직관을 다니며 내 삶에 숨 쉴 틈을 조금씩 불어넣어준다. 축구는 내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거리’다.
교수님이 그토록 말씀하신 ‘예술 말고 다른 것’ 나는 그게 축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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